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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y 10. 2021

파리에서 살아남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수 파리지앵이 되어 있었다.

원래는 브런치에 우리 커플이 처음 동거를 시작하고 프랑스의 파트너십 제도인 팍스를 선택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천천히 담아보려고 했는데, 지금 당장 하고픈 말이 많아서 시계를 빠르게 감기로 했다.


우리는 2021년 2월 팍스를 체결했고 나는 파리로 이주했다. 물론 나의 반려묘 심바와 라떼도 함께.




스테펜과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마음은 따로 결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단단해졌고, 파리로 이주를 결정하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에 살아본 적도 있고, 프랑스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무엇보다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뢰하는 사람인 스테펜과 내내 함께일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2021년 2월 프랑스에 잠시 입국했고 우리는 팍스를 체결했다. 


팍스 후 시청 앞에서 한 컷


나는 뒤이어 곧바로 파리로의 이주를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반려동물과 함께 해외 이주를 한다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고양이들의 검역을 위한 서류는 완성되기까지 무려 반년이 걸렸고 코로나 상황에 따라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하던 프랑스의 국경도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이미 팍스를 위한 서류 뭉치를 준비하느라 1년 치 인내심을 소진해버린 내게 너무 가혹한 과정이었다.


게다가 드디어 모든 행정 절차가 끝나고 출국을 1주일 앞둔 시점, 기껏 힘들게 구해 놓은 파리에서의 직장에서 급히 퇴사를 하기까지. (두둥.) 나는 휘날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어찌어찌 비행기를 탔고, 고양이들과의 살 떨리는 12시간의 비행 끝에 무사히 샤를드골에 도착해 파리 집에 짐을 풀었다.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수 파리지앵이 되어 있었다. (저 올해 팔자 핀다면서요 사주 선생님!!!)




나와 고양이들이 파리 집에 입성하고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을 풀어 나의 세면도구들을 화장실에 나란히 줄지어 세우면서 스테펜은 감격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며. 부양 동물을 둘이나 단 채로 쳐들어온 파트너가 고정 수입을 잃었는데도 대책 없이 긍정적인 스테펜. 나는 이렇게 이 곳에 증발한 그의 현실감각을 성토하면서 불안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지만 또 사실 스테펜의 그런 점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파리에서의 로맨틱한 동거 일기가 될 줄 알았던 브런치 기록장. 아무래도 “파리에서 살아남기 (feat. 고양이 두 마리)”가 될 것 같지만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록을 해 봐야지. 우리 살아남을 수 있겠지?




(살아남기 위한 유튜브 채널 홍보 - 구독구독미!)

https://www.youtube.com/c/soosteph/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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