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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안 Dec 23. 2021

1. 영어, 난 왜 읽을 수만 있는가?

"I... no English..."

   영어를 할 줄 아시나요? 어떤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대부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모두 포함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배우게 되면 조금 독특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영어 읽기에 특화되어 있는 반면, 나머지 듣기, 말하기, 쓰기에 관해서는 다소 어려워합니다. 아주 기본적이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먼저 생각해 볼 부분은 “입력”과 “출력”입니다. 언어에서 “입력”은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부분에 해당합니다. 읽기와 듣기가 이 부분에 해당합니다. “입력”은 내가 단어를 문법에 맞추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므로 수동적인 언어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거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활동이죠. 그에 반해서 “출력”은 내가 적절한 단어를 골라서 적절한 문법에 맞게 고쳐서 나열해야 합니다. 능동적인 언어활동이라 할 수 있죠. 내가 만들어야 하니까요.

   두 번째 생각해야 할 부분은 표현 방법입니다. 표현 방법이 “문자”라면 읽기와 쓰기 활동이 될 것이고, “음성”이라면 듣기와 말하기가 되겠죠. “문자”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이 있다면, “음성”은 즉각적으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죠. 문자 언어는 의식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여러 번 읽어 볼 수도 있고, 자기가 써 놓은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검토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음성 언어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창함이 더 중요하게 됩니다. 위에 써 놓은 것을 표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왜 영어에서 “읽기”활동에 특화되어 있는지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는 “문자”를 사용한 언어활동 중 “입력”에 해당하는 언어활동에 장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조급할 필요 없이 천천히 보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여러 번 읽어 볼 수도 있으며, 특히 내가 쓴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 문법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읽기”활동을 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배우면 읽기에 특화될까요? 간단히 말하면 학교에서 읽기 교육을 많이 시키기 때문이지만, 조금 더 깊숙하게 들여 보면 어휘와 문법의 잘못된 신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 학원을 비롯한 영어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한 가지 언어교육철학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어휘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잘 알면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Bottom-up 방식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쪼개어 보면, 결국 단어들이 문법에 맞게 변형, 사용되어서 모여 있는 문장의 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신화의 시작점입니다. 언어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누었을 때, 하부구조인 단어, 문법을 열심히 익히면 상부구조인 문장, 글도 잘 읽고, 듣고, 말하고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죠. 그래서 영어를 표현하는 가장 하위 단위인 알파벳을 배우고, 알파벳의 음가를 공부하는 phonics [2]에 열을 올리고, 하루에 몇십 개씩 단어를 외우게 됩니다. '3인칭 단수가 주어로 오면 일반동사의 현재형에 s를 붙인다'는 식의 문법도 배우고요. 얼핏 보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하부구조에서 상부구조로 올라가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도 속도가 너무 더딥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이해하고 문법적인 지식을 응용하여 이해를 하니 속도가 너무 느리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나마도 읽기 활동에서만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쓰기 활동만 하더라도 이런 방식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취미로 영화를 봐요”라는 말을 영어로 쓰려고 한다면, “I watch movies as my hobby.”라고 쓰고 싶은데, 확신이 없죠. 뭔가 다른 표현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내 손을 붙잡습니다. 안전하게 ‘“My hobby is watching movies.”라고 해야 하나? 너무 한국어식 표현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쓰기는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흔히 ‘영어회화’라고 표현되는 듣기와 말하기에서는 이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힙니다. 먼저 “What do you do for fun?”이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까맣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글자로 되어 있다면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라도 있지만, 내 눈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외국인이 있다면, 긴장되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상대방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더라도 ‘what do you do? 뭘 하냐고? for fun? 재미로? 재미로 뭘 하는지를 묻고 있군!'이라는 순서에 맞추어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아찔한 영어입니다.


   결국 우리는 '단어와 문법'이라는 하부구조를 잘 익혀도 기껏해야 '읽기 활동'에서 소기의 성과를 얻을 뿐입니다. 많이 연습하면 읽기 속도가 좀 빨라질 뿐이겠죠. 쓰기, 듣기, 말하기는 세상 힘든 일이 됩니다. 맞는 말 같기는 한데, 뭔가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죠.

“영어로 말하는 것은 나에게 조금 어려운 일인 것 같아.”라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는 '어휘와 문법'을 사용해서 영어로 한번 말해보죠. “Speak English”라는 어구를 떠올리지만, 이내 주어로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동명사를 활용하여 “Speaking English”라고 고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부분을 말하기 위해서 전치사 “for”를 써야 할지 “to”를 써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고심 끝에 “Speaking English is hard for me.”라고 말하려 하는 순간! 'it가주어 구문'을 써야 하는가 싶어서 “It is little hard for me to speak English.”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미 말할 타이밍을 놓쳤겠죠. 결국, 우리는 단어와 문법이 필요 이상 강조된 교육을 받으면서 잘해봐야 읽기 활동만 되는 1/4짜리 영어 공부를 하게 된 셈입니다.


   단어와 문법은 영어에서 중요한 부분 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다소 지나치게 단어와 문법에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초등학교의 교과서는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단어와 문법 공부에 많이 메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어와 문법의 잘못된 신화는 그렇게 우리를 영어의 읽기에 묶어 놓고 있습니다.




[1] 듣기와 읽기를 능동적인 언어활동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듣기와 읽기 활동을 할 때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같은 텍스트를 읽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보가 다르므로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정보를 만들어 내느냐’ 혹은 ‘받아들이느냐’를 기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2] Phonics는 알파벳과 그 알파벳의 소리의 연관성을 가르쳐서 읽거나 쓸 수 있게 하는 영어 학습의 한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b”는 /브/ 소리가 나고 “u”는 /어/, /우/ 등의 소리가 나며 “s”는 /스/ 소리가 나니, “bus”는 /버스/라는 소리가 난다고 가르치는 영역입니다. 현재의 30, 40대는 익숙하지 않으나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면 의례 phonics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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