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유성 ( Authenticity)
미국과 유럽의 콧대 높은 문화에 시원하게 한방 먹인 최초의 한국인 가수는 아시아의 한류스타가 아닌 한국 가수 싸이였다.
강남스타일은 웃음과 조롱이 섞인 유튜브의 뜨는 비디오 (viral video)로 시작해서 원 히트 원더 (one-hit wonder)의 반열에 오른다. 일본의 코믹 뮤지션 피코 타로의 노래 "펜-파인애플-애플-펜 (https://www.youtube.com/watch?v=0E00Zuayv9Q)"처럼 반짝 웃음을 주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1987년 로스 로보스의 라 밤바와 1996년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의 파급력 능가했다. 싸이는 K팝의 서막을 열었고 가야 할 대략의 방향을 알려주었으며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 형이다.
이전까지도 원더걸스, 미쓰에이 등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은 뭔가 달랐다. 일단은 한국말로 했다는 것, 한국인들만 이해할 것 같은 유머와 감각을 보여줬다는 것, 그리고 유튜브라는 색다른 매체를 통해서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한국말로 진정성, 고유성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틴 스코세지 감독을 인용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도 authenticity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국제화된 건축가 보다도 자국에서 자라고 뿌리내린 건축가들이 더 자주 그 상을 받아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프리츠커상을 받은 한국 건축가가 없는데 여기에 관한 생각들은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참고로 역대 프리츠커 수상 건축가 46명 중 미국 8, 일본 8, 스페인 4, 영국 4, 스위스 3, 독일 2, 프랑스 2, 이탈리아 2, 브라질 2, 포르투갈 2이고 중국, 인도, 덴마크, 칠레, 노르웨이, 멕시코, 호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도 각 1명씩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니까 미국인의 감각과 영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 그게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K-Pop은 한국말을 하고 한국의 문화와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게 authenticity이다. 뭔가 색다르고 고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튜브가 일상이 된 미국의 10대 층을 중심으로 반은 놀림감으로 반은 그들만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힌 강남스타일에 대한 열광은 자연스럽게 K-Pop이라는 장르로의 호기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거긴 90년대부터 쌓아놓은 방대한 K-Pop 콘텐츠와 내공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의 십 대들은 열광 했고 그들에게 너무나 새로운 이 세계에 빠져들었다. 칼군무, 세련된 패션, 엄청난 프로덕션, 혼재된 성 정체성 (예쁘면서 근육질인 남성, 청순하면서 섹시한 여성)으로 대변되는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관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K-Pop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관념을 깨기 시작했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변모한 대중음악의 대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언어가 되어가고 있고 80-90년대 일본의 대중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파워를 뽐내고 있다. 파생적으로 K-Beauty, K-Food 등 뭐든지 K자가 붙으면 통하는 브랜드 파워를 한국이 가지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중국의 문화는 특이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문화이고 일본의 문화는 신비롭고 이질적이어서 경험해 보고 싶은 문화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문화는 따라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문화이다. 동화되고 싶고 나아가 "한국사람"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블랙핑크를 보면 와 신기하다, 한국은 특이하네가 아니라 멤버가 되고 싶다, 그들과 클럽에 놀러 가고 싶다, 내 아내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BTS는 그냥 천상의 존재이다. 말이 필요 없다.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형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화장품이 뭔지, 그들이 입는 옷이 뭔지, 그들이 쓰는 언어를 알아듣고 싶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은 거다. 오히려 영어 노래를 발표하면 질 떨어지는 영어 가사 말고 아름다운 한국말로 불러주세요 한다. 이제는 세련되거나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피부가 좋으면 "한국사람 같다," "한국 스타일이다"라고 표현한다. 16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를 떠올리면 너무나 커져버린 인식의 차이에 아직까지도 헛웃음이 날 때가 있다. 1980년대 러시아 락(rock)을 개척했던 빅토르 최가 이 시대까지 살아있었다면 얼마다 자랑스러워했을까.
그래서 난 행복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무한하게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아들 딸이 한국에 뿌리를 둔 것이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의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고 authentic 하면서 특별하고, 더 나아가 장점 이 되기를 바란다. 그게 미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계층과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들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내가 이토록 자부심을 느끼듯 한국사람들도 이제는 개발도상국이니 헬조선이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자부심을 가지고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리더의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선진국이고 이미 대단하다. 이젠 자신 있게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상단 이미지: 1980년대 러시아 락의 선구자, 빅토르 최- Tsoi W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