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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권 Nov 05. 2020

긍정의 학연, 혈연, 지연

부정적인 관행을 긍정적인 관습으로 바꾸기 

한국사회에서 학연, 혈연, 지연은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만의 일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어느 나라에 가든 혈연, 학연, 지연이 존재한다 –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사람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학교에서 학생 선발이나 교수 채용을 위해 평가를 할 일이 자주 있다. 그럴 때 내가 과연 혈연, 학연, 지연을 완전히 배재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불가능하다. 한국사람이면 한번 더 보게 되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 더욱 눈이 번쩍 떠진다. 이들은 나와 공유하는 경험과 생각들이 더 많을 것이고 앞으로 좋은 학생으로, 친구로, 동료로 지낼 가능성도 더 많기 때문이다.  


SKY 대학 출신들이 한국 사회 전반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주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명문대 출신들이 큰 힘을 발휘한다. 석사과정이나 교수 지원자들 중 명문대 출신들이 다른 주립대나 비명문 사립대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많은 심사자들도 명문대 출신이고 비슷한 이력이라면 명문대를 선호하는 건 어디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은 피할 수 없는 학연, 혈연, 지연을 조금 더 공식화하고 했다는 것이 한국과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숨어서 장난치거나 기브 앤 테이크를 하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어 놓고 하라는 거다. 뭘 통해서? 제도적 장치들다양성 확보를 위한 규정들을 통해서.  




제도적 장치: 추천제도와 투표를 통한 심사위원회 구성


미국 대학이나 회사들은 지원자들에게 추천서가 아닌 추천자 명단을 요구한다. 학교나 회사 측에서 직접 그 명단을 보고 추천자에게 연락한다. 그 과정에서 지원자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고 추천서도 안 보는 것이 관행이다. 한국에도 추천제가 있지만 아직까지 그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지는 못했다.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지원자가 받아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지원자가 자신의 추천서를 써서 서명을 받아 제출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는 추천서의 공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심사자들이 지원자의 뒤를 캐듯이 여기저기 알아보거나 지원자가 스스로 영향력 있는 사람을 통해 심사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을 부탁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지원자도, 심사자도, 추천자도 다 피곤하고 찝찝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연, 혈연, 지연의 파워가 뽑히느냐 안 뽑히느냐를 좌우하는 일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정형화된 절차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추천서의 공신력이 확보된다. 내가 경험한 미국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심사자도 모두 같은 프로세스를 따르고 각자의 역할, 책임, 의무가 분명하다. 추천서는 추천자의 평가와 서명이 명시된 공식문서이다. 


나 또한 아무한테나 추천서를 써 주지 않고 써 주는 경우에는 정말 객관적으로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추천한다면 장점을 좀 더 부각하려고 노력한다 – 내가 추천하니까 당연한 거다). 모든 추천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이 문서가 힘을 발휘한다. 그럴 때 비로소 추천자의 영향력이 아닌 추천서의 퀄리티가 중요해진다.




다양성과 포용을 위한 규정들 


미국의 대학들과 큰 기업들은 다양성과 포용 (Diversity and Inclusion)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부서가 존재한다. 이들이 권장하는 다양성 비율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남녀 성별비는 물론이거니와 인종, 소수민족, 외국인 비율 등도 이에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원자 풀(pool)도 권장 비율을 만족해야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채용 위원회 자체는 매번 투표를 통해서 선별되는데 그 구성원도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남녀 성별비, 인종, 전문분야, 등). 아주 엄격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절차에 동의하고, 이런 분위기에서 잘못 불평을 했다가는 인종차별자나 성차별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성을 위한 노력들이 있다. 능력 중심 평가 방식 도입과 각 종 쿼터제들이 그 예이다. 여기에 관해서 다양한 논란들이 있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규정을 통한 개선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미국이 인종차별과 같은 제도적인 불평등이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규제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혈연, 지연, 학연의 문제도 알다시피 심각하다. 당장은 귀찮고 힘들겠지만 이러한 규정은 다양성과 포용의 분위기를 형성할 것이고 결국은 자연스럽게 관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한국의 사회는 분명히 미국과 다르기 때문에 각종 문제에 한 접근법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방식이 틀린 건 틀렸다고 하고 맞다면 맞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을 접근하는 태도는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면 좋겠다. 


나는 한국의 크고 작은 조직들에게 바란다. 최소한만 지키면 되는 법적 규정이 있음에도 미국의 크고 작은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서 실행하듯이 우리가 속한 조직의 문화도 적극적으로 바꾸자. 아무리 노력해도 혈연, 지연, 학연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투명한 제도, 자발적인 규정, 모든 구성원의 열린 마음을 통해서 조금씩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다양한 혈연, 지연, 학연의 사람들을 뽑을 수 있다. 


부정적인 관행이 긍정적인 관습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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