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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권 Nov 05. 2020

3가지 유형의 창의성

길거리 화가들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유럽 배낭여행 중이 흔하게 마주치는 길거리 초상화 화가들이 인상에 남는다.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여서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업 과정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화가들에게서 3가지의 유형이 드러나는 게 흥미로웠다. 내가 관찰한 세 가지 유형이다.  

 화가들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리 화가들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1. 꼼꼼한 사실주의

소요시간 30-45분, 가격 $$$ (제일 고가), 작가 10명 중 1-2명

사실성과 유사성이 뛰어나다.

실력 있는 작가의 작품은 모델의 본질 혹은 내면세계를 포착하기도 한다.

모델은 그 정성에 감동해 소중하게 그림을 받아 들고 "액자에 넣어서 보관해야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2.  대충대충 캐리커처

소요시간 5-10분, 가격 $ (제일 저렴), 작가 10명 중 6-8명

사실성은 떨어져도 유사성은 뛰어나다. 길거리 초상 화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우스꽝스러운 그림과 아부성 그림으로 다시 나뉘는데 전자는 모델의 단점을 과장시키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열광하고 모델은 씁쓸하다. 반면에 후자는 미화된 모델만 만족해한다. 


3. 스타일리시한 아트

소요시간 10-15분, 가격 $$(중간), 작가 10명 중 1-2명

사실성과 유사성은 떨어지나 그림 자체가 이쁘다. 색채 조합, 선 느낌, 디테일 처리, 분위기, 구도 등 작가의 스타일이 선명하게 묻어있다.

모델의 만족도가 매우 높고 그 길에서 가장 핫한 작가이다. 모델이 누가 되었던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작품"이 된다.


세 가지 유형의 작가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실주의 작가들은 작품당 돈을 많이 받기는 하는데 참 고생이 많다. 시간과 노력 소요가 커서 하루 동안 그림을 몇 장 그리지도 못한다. 보는 나도 지쳐갈 판이다. 결과물은 아주 좋지만 이게 사진의 영역을 기웃거리면서 한계점들을 괜히 드러낸다. 궁극적인 목표가 대상의 영혼까지 담는 유사성과 사실성이라면 과연 사진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사실주의는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생각보다 평온하다. 완성도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기 때문에 성취감도 매우 높다. 보이는 데로 그리면 되는 것이라 창작의 고통도 적고 몰입도도 좋다. 그림 체력이 길러진 상태라면 도를 닦는 기분도 들고 현재에 충실해져서 명상을 하는 기분도 든다. 이게 문제다. 소싯적 피카소의 사실화도 꽤 괜찮았었지만 그 길만 갔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피카소가 되었을까? 

 

사회와 부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 회사를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직장인들, 오직 가족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엄마들. 그 희생정신과 헌신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박수를 보낸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더 큰 욕심을 부려야 하고 조금은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주체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몸도 힘들고 정신도 요동치겠지만 내 분야의 피카소가 되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 아닌가.


캐리커쳐 작가들의 그림은 그리는 과정도 그 결과도 인상적이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 오글거림, 혹은 갸우뚱하는 모습에 반응하는 모델의 표정도 참 재미있다. 돈은 적게 받지만 빨리빨리 많이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왠지 좀 가볍다는 느낌이다. 기법과 스타일이 정형화되어서 누가 그려도 다 비슷비슷하다. 작가성이 묻혀버린다고 할까.


대충 쉽게 그리는 것 같은데 사실 캐리커처 작가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연습을 했을 것이고 자신의 작가적 이상과도 타협을 했을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 이미 대중에게 인기 있는 정형화된 스타일이 따라 하기도 쉽고 안전한 돈벌이어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캐리커쳐 아트 자체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데이비브 레빈 (David Levine)과 같은 캐리커쳐 아티스트는 미술의 영역을 뛰어넘어 정치, 사회, 문화의 다양한 영역을 풍자하고 비평했다. 


지금 유행하는 것들을 내 주관 없이 따라가기만 한다면 내가 그 속에 묻혀 존재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남들 따라 비슷비슷한 치킨집을 열고 커피숖을 열고 짝퉁 디자인을 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고 빠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접근법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가볍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쉽게 돈 벌고 쉽게 성공하려는 마음을 다스리자.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공을 쌓고 인내해서 묵직한 것을 만들어보자. 누가 뭐라 하든 나만의 것, 기회의 산물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유행을 초월하는 힘을 가졌다.    


작품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그림들은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진하게 베여있다. 이건 손재주의 연마 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다. 그들은 캐리커쳐 화가들 만큼이나 힘을 빼고 슥슥 쉽게 그린다. 하지만 사실 이런 작가들은 길거리로 나서기 전에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기 위해서는 창작의 고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림은 그 자체로 카리스마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델이 누가 되었던 그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넓은 항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담아도 그것을 포용할 수 있다. 그 항아리는 너무나 멋져서 내용물이 뭐가 되었던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것이 브랜드이고 정체성이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그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가 그랬고, 지금의 한류가 그렇다.  


우리가 목숨 거는 스펙, 사회가 정하는 기준, 정답이 있는 교육, 급변하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경험, 노력, 지식, 생각을 통해 나만의 멋진 항아리를 빚지 않으면 좋은 것들을 담을 수가 없다. 아무리 반짝이고 비싼 것들을 채우려고 해도 항아리가 없어서, 작아서, 투명해서, 약해서 그것들을 포용할 수 없다. 좋은 재료도 좋지만 항아리부터 잘 만들어 보자. 


멋진 항아리를 가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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