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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권 Dec 02. 2020

넷플릭스와 독립선언문

문화콘텐츠에 스며있는 한국인의 가치와 사상 - 코리안 드림

넷플릭스를 선두로 하는 전 세계 VOD 시장에서 한국 영화 및 드라마 콘텐츠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각 나라별 콘텐츠 순위에 한국산 드라마가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양한 소재와 잘 짜인 스토리, 풍부한 감정을 가진 캐릭터들, 이색적인 배경 등 수많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우리도 모르게, 아니 모르기보다는 의식하지 않고 공유하고 전파하는 코리안 드림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의 가치를 공유하고 나아가 동경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공유하고 전파하는 코리안 드림은 무엇일까? 


우선 코리안 드림은 좋은 직장, 집, 차 등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성공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의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 문화, 교육을 대하는 자세, 술 문화, 예의범절, 삶의 자세 등에서 은연중에 풍겨져 나오는 가치와 행복의 기준이 코리안 드림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준 아메리칸드림을 들여다본다면 코리안 드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메리칸드림


언뜻 보면 코리안 드림과 아메리칸드림은 참 닮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차이는 있고 그것을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아메리칸드림의 뿌리는 미국의 영국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간다. 1776년 7월 4일에 공포한 독립선언문의 가장 유명한 두 번째 문장을 보자.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1]
미국 독립선언문, 1776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United_States_Declaration_of_Independence.jp

평등, 권리, 인권, 자유, 행복추구권을 포함하는 자연법과 인권 사상을 강조한 문장이다. 여기서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은 존 로크 (John Locke)가 말하는 3대 자연권인 생명, 자유, 재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독립선언문에서 ‘재산’이 ‘행복 추구권’으로 수정되었고 평등권에 위배되는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를 인정하는 몇몇 주의 반대로 아예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 [2]. 추후 미국 헌법에는 ‘행복 추구권’이 ‘재산’으로 바뀌었고 노예제도도 폐지되었지만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그 시적이고 함축적인 의미 덕분에 아메리칸드림의 모태가 된다.


여기서 출발한 아메리칸드림의 개념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한 행복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개척할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를 통해 운이 아닌 희생, 도전, 노력으로 누구든지 원한다면 상위 사회계층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상대적 약자를 지칭하는 언더 독 (underdog)이 성공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실패를 딛고 올라선 사람을 찬양한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와 디즈니 스토리에 아메리칸드림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다. 


아메리칸드림의 개념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지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물질적인 성공에만 편중하는 경향을 두고 행복의 기준을 다시 정의 내리자는 목소리가 크다.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시스템화 된 차별 등의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더 이상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없다는 우려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회와 문화의 ‘긍정성’을 대변하는 개념이기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코리안 드림


그러면 코리안 드림은 무엇일까? 아메리칸드림의 모태가 미국의 독립 선언문이라면 코리안 드림의 모태를 3·1 독립선언서에서 찾아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글의 마지막 문단을 보자. 

우리의 고유한 자유권을 보전하여 자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며, 우리의 넘쳐나는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상에 민족적 우수성을 맺어나갈지로다. 우리가 이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하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암울한 낡은 옛집에서 활발히 일어나 만물의 현상과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도다. 오랜 조상이 우리를 도우며 전 세계 기운이 우리를 밖에서 지켜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눈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3·1 독립선언서, 1919–( http://blog.ohmynews.com/jeongwh59/tag/민족대표%2033인,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

자유권 외에 민족적 우수성, 양심, 진리, 낡은 옛집, 조상, 성공이라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본문에 이어 나오는 공약 삼장에서도 정의, 인도, 생존, 존영, 자유적 정신, 질서, 정당의 개념을 강조한다. 자유권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강조점들이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3·1 독립선언서를 읽으면서 지금까지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을 발견한다. ‘민족적 우수성’과 나가 아닌 ‘우리’에서 관계성과 정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을 느낀다. ‘양심’에서 체면, 공정성, 정의를 중요시하는 우리를 발견한다. ‘남녀노소’와 ‘조상’에서 조상을 섬기고 부모님을 섬기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과 진정성, 양보, 겸손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를 재 확인한다. ‘독창력’과 ‘진리’에서는 배우고 성찰하는 것을 강조하는 우리의 교육열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공’과 ‘’에서는 성공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전통사상의 기초가 되는 유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가지 덕목과 잘 들어맞는다.  개인의 권리와 성장을 강조한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더 나아가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이상향,  코리안 드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에 깊이 담겨있는 이러한 코리안 드림은 외국인들이 볼 때 정말 인상적이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서양 문화권들은 더더욱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릴 만하다. 물론 아메리칸드림이 그러하듯 코리안 드림도 부정적으로 왜곡되는 경우도 많다. 권위주의, 갑질, 가부장적인 가정,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등이 그 예들이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이 긍정적으로 구현되는 가정과 사회를 지켜 나간다면 아메리칸드림이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준 영향에 버금가는 효과를 한국에 줄 것이라 믿는다. 




코리안 드림을 아메리칸드림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우리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고유한 역사에서 나온다. 그것이 옳거나 나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기꺼이 포용(embrace) 해야 할 것이고 주체성을 가지고 소유(own)할 대상이다. 그럴 때 비로소 긍정적인 코리안 드림이, 3·1 독립선언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1] 안경환 교수의 미국 독립선언서 주석 (국제지역 연구, Vol.10 No.2, pp. 103-126) 논문 번역임


[2] 또 다른 아이러니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에 행복 추구권이 우리나라 헌법에 추가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만이 유일하게 헌법에 행복 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는 사실도 특이하지만 인권 유린이 난무했던 시절에 생긴 조항이라 아이러니하다. 행복을 규정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단 이미지] 세계를 사로잡은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06/57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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