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짠단짠, 나의 스페인
스페인에서 뭐 하고 살았니? 먹고 살았다!
다들 아는 스페인 다섯 끼 이야기.
스페인에서는 아침(desayuno), 오전 간식(almuerzo), 점심(comida), 오후 간식(merienda), 저녁(cena)까지 다섯 번의 먹는 시간이 있다. 삼시세끼 사이에 간식이 두 번 있는데, 각각 이름을 따로 붙여준 것뿐이지 사실 별 건 아니다. 아침은 보통 커피 한 잔이나 작은 빵 조각, 시리얼 등으로 간단하게 먹는 게 대부분이고, 본격적인 식사는 오후 2시쯤 먹는 점심과 오후 9-10시경의 저녁이다. 간식은 식사 사이에 출출할 때 먹는 것이니 알무에르쏘는 10-11시쯤, 메리엔다는 6-7시쯤이 보통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 추가.
음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짠 음식은 salado라고 하고, 단 음식은 dulce라고 하는데, 쉽게 이야기해서 소금으로 간 하면 salado, 설탕이 들어가면 dulce다. 그러니까 식사의 메인 메뉴는 대부분 짠 음식이고, 디저트는 단 음식이다. 두 종류 음식을 같이 먹을 때는 짠 음식을 먼저 먹고, 단 음식으로 입가심을 한다.
그럼 빵은? 둘 다 가능하다. 뭘 넣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바게트 빵에 하몬을 끼워 먹으면 짠 음식 종류가 되고, 컵케이크나 스폰지케이크 같은 건 단 음식이다. 엠빠나디야(Empanadilla)라고 부르는 만두 모양의 빵이 있는데, 안에 토마토소스를 넣거나 시금치와 치즈로 채워 구우면 Salado가 되고, 설탕 넣고 요리한 고구마나 단호박이 들어가면 dulce가 된다.
다시 스페인의 다섯 끼로 돌아가보자.
아침에 커피 한잔에 크로와상 같은 빵 하나 간단히 먹는다면 단 음식이다. 오전 간식 대표 메뉴는 바게트빵 샌드위치인 보까디요(bocadillo)인데 하몬이나 부친 계란을 주로 넣으니 짠 음식이라 할 수 있고, 점심 식사는 당연히 짠 음식. 가끔 오후 간식은 동네에 두 개뿐인 카페 중 하나를 골라서 가는데, 나는 주로 단 종류 빵에 손이 간다. 저녁은 식사니까 짠 음식이고. 그러니까 나는 보통 단-짠-짠-단-짠 먹으면서 하루를 산다. 물론 개인의 선택과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조합이 나올 수 있겠지만, 어쨌든 단맛과 짠맛을 오가면서 하루 다섯 끼를 채우게 된다.
스페인에서 먹고 산지 5년이 넘었다.
외국인은 5년에 한 번씩 거주증을 갱신해야 하는데, 스페인으로 이사 오면서 만들었던 거주증의 기한이 만료됐다. 여기서 산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는 건데,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스페인으로 이사 올 즈음부터의 시간은 내 딴에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드라마틱한 시기였지만, 사실 남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다섯 단어로 요약될 것 같다. 국제결혼, 이민, 경력 단절, 출산, 육아.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고 마음은 요동쳤었지만 시간과 함께 많은 것들이 잊혀졌다. 생활 반경은 좁아지고 감정의 파고만 깊어진 듯도. 그동안 이룬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딸아이 얼굴만 떠오르는 걸 보니, 결국 열심히 먹고 산 게 전부인 것 같다. 살려면 먹어야 하므로, 단-짠-짠-단-짠 반복 하면서.
단짠짠단짠, 나의 스페인.
아이가 조금 컸다고 약간의 시간이 생긴 건지, 마음에 틈이 생긴 건지, 기운이 조금 남는 건지, 어쨌든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으니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늘더라도 길게.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내가 아는 것을 쓸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을 되돌아보다가 그동안 스페인에서 먹고 산 이야기를 숙제처럼 써보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무얼 먹고 살았는지,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왜 그런건지.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말해준다 했으니 왠지 부끄럽긴 하지만 그동안 나를 만들어 온 달고 짠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써보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당신을 들어주면 좋겠다.
아 참, 미리 고백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이다. 소곤소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