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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mi H Jan 11. 2021

튀어나온 못

아직도 싱가포르의 하늘은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특별히 예쁜 하늘 색깔도 아닌데, 매일 아침 두껍게 내 머리 위까지 내려온 회색 구름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나라의 하늘을 봐왔지만 꽤 특색 있었던 것 같다.  


빽빽한 구름 사이로 채 뚫고 나오지 못한 햇살 마냥 짜증 한가득 어깨에 이고 회사로 향한다. 매일 습도 90퍼센트에 달하는 날씨에 책상에 앉을 때면 이미 등은 흠뻑 젖어 있고, 커피 한잔으로 숨을 돌릴 때면 옆자리 동료의 똑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넌 왜 항상 타이트한 치마만 입어? 어제 속눈썹 새로 했어?” 지겹지도 않은지 매일 내가 무엇을 입는지, 화장은 어떻게 했는지 재빠르게 스캔한 후 같은 질문을 매일 반복한다. 그러면 난 늘 그렇듯 “응 이런 스타일이 좋아.” 라는 영혼없는 대답을 돌려주고 컴퓨터를 켠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임원들도 청바지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편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곳이었다. 남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회사 내 복장에 대해서 제약이 많이 없는 곳이었다. 보통 사람들은사람들은 이런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직원들이 스니커즈를 신고 칸막이가 없는 오픈형 공간에서 자유로이 이야기를 하는 곳을 떠올릴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이던 이 회사도 바로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의 문화에도 보이지 않는 룰이 있었나 보다. 나는 블랙 앤 화이트 같은 모노톤을 좋아하고, 앞이 뾰족한 하이힐을 즐겨 신고 허리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좋아한다.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며 유행하는 색깔보다는 내가 내키는 대로 그날 그날의 아이섀도 색깔을 정한다. 주로 화려한 색깔을 즐겨 쓴다. 소위 그들이 정한 편안한 사내 분위기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스타일을 좋아하니 항상 눈에 띄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는 우리와 달라’ 라는 눈빛으로 대한다. 예를 들면, 일이 끝난 후 동료들끼리 맥주 한잔 하러 갈 때도, “우리 호커 센터 갈 건데, 괜찮겠어?” 라고 물어본다. 호커 센터는 저가 음식이나 음료를 파는 야외 노점상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로컬 서민들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내가 당연히 괜찮다고 하면 그들은 “넌 레스토랑 같은 데만 갈 것 같아서” 라며 아는지 모르는지 듣는 이로서는 조금 무안한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악의는 없었고, 저렇게 질문을 하지 않기 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꼭 다른 스타일의 복장 때문에 다르다고 취급받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였지만 친구들에게 나는 ‘특이한 아이’, ‘조금 다른 아이’로 기억되고 있다. 꽤 최근까지도 이유를 몰랐고,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어느 집단을 가던 항상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곰곰이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왜 내가 달랐는지 물어보면 “그냥 뭐… 넌 야자 하기 싫다고 집에서 공부했잖아. 그 때 야자 안 한 애 전교에서 너밖에 없었거든. 난 불안해서 못 그러겠던데. 그리고 너 외국어 좋다고 관련 학과 간다고 노래 부르고 다니고, 머리 스타일도 좀 웃겼어 야” 라고 대답하며 낄낄거린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4월의 끝자락인 어느 날, 너무 추워서 난 패딩에 목도리 까지 두르고 강의실에 나타났다. “4월 말인데 왜 이러고 왔어, 계절에 안 맞게”.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추우니까.” 라고 대답하고 무심히 수업을 들었다.  한창 봄이라 모두들 분홍에 노랑에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다니는 무리들 속에서 검은 색 패딩에 두꺼운 목도리로 무장한 밝은 갈색 머리 여자 아이는 그저 이상한 애로 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남의 시선에 덜 신경 쓰는 성격이었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표현했을 때 받아들여짐 보다는 특정 집단의 성향과 많이 달랐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서 얘기한 싱가포르 회사에서의 일화와 마찬가지로 사내 드레스 코드에 제약이 적은 경우인데도 불구하고, 티셔츠와 청바지가 그들의 스탠다드인 것이다. 편안함의 기준은 개인이 생각하는 편안함이 아니라 그들이 정한 티셔츠와 청바지가 편안함이 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직장에서 하이힐과 타이트한 원피스가 편안하다고 느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으니 항상 난 ‘다른’ 부류가 된다. ‘편안함’이라는 코드가 나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제약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나도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고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주위에서 내 스타일에 대해 코멘트가 많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편하기는 커녕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그룹 안에 다른 성질의 사람이 보이면 그 그룹 성질에 꼭 맞추려고 한다. 외형이던 성향이던 속한 그룹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나를 그 그룹 안에 맞춰야하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떄문에 굳이 무언가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던 나를 특이한 아이로 보지 않았을까? 한국 뿐만이 아니다. 13년 동안 세 나라에 잠시 정착하여 생활을 해 보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의 성향은 어딜 가던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선진국을 가 보면 선진국이 된 이유가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한 사회의 울타리안에서 어떻게 그 다양성을 발현시키며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무작정 맞추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토론을 많이 하고 의견을 조율한다. 다름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13년 만에 한국에 와서 보니 달라진 것도 많지만 아직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모두 생각과 취향이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존중해 주자.  

아직도 나는 많은 것이 불편하다. 모두가 따르고 있는 유행도 따르지 않고 관습과는 조금, 아주 조금 다른 생각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의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기준을 다른 사람에 갖다 대어 누군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나처럼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많이 줄어 들지 않을까? 그리고 수많은 ‘나 '라는 존재가 인정 되니 좀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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