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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망트망 Jan 11. 2023

그들의 삶, 잠시 엿보고 왔습니다.

홍콩 발리 비건 여행ㅣ우붓 몽키 포레스트




동물원?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그런데 동물원은 별로 안 좋아했다. "넌 동물 좋아한다면서 에버랜드까지 와서 동물원은 안 가?"라는 질문을 들었을 땐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네..? 나 실제로는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까?'



나중에 동물권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그때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정리가 되었다. 진심으로 비인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동물'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이 갇혀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몽키 포레스트

Sacred Monkey Forest Sanctuary



몽키 포레스트의 미션은 "Tri Hita Karana"의 개념을 바탕으로 지역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트리 히타 카라나"는 힌두교의 철학 중 하나인데, 정신적, 육체적 안녕에 도달하는 세 가지 방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본질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그리고 최고의 신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한다.


(힌두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 그 깊은 의미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몽키 포레스트는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숲과 원숭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운영시간

9:00 - 18:00

* 마지막 입장 시간 17:00


입장료 (외국인)

어른 80,000 루피아

아이 60,000 루피아

* 특이했던 점은, 외국인과 내국인 입장료가 달랐는데 외국인 입장료가 훨씬 비쌌다는 것


Monkey Selfie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원숭이와 같이 셀카 찍은 것처럼 연출해서 직원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서 할 생각도 없었는데, 티켓 살 때 보니 이미 마감되었다고 쓰여있었다. (평일 12시쯤이었음)






티켓을 사서 나오면 커다란 안내문이 먼저 반겨준다.



당황하지 마라.

만약 원숭이가 당신에게 점프한다면, 음식을 떨어트리고 천천히 멀어져라. 그들은 곧 내려갈 것이다.


뛰지 마라.

원숭이가 당신에게 다가온다면, 침착함을 유지하고 소리 지르지 마라. 그들을 겁먹게 할 수 있으니 소리 지르는 것은 피하라.


원숭이의 눈을 쳐다보지 마라.

이것은 공격성의 표현이다.


음식을 숨기지 마라.

왜냐하면 원숭이들이 그것을 알고 찾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류의 플라스틱, 종이 가방을 가져오지 마라.

숲을 쓰레기 없이 유지하고 원숭이들이 그것을 가져가서 갖고 노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귀중한 물건을 잘 챙겨라.

선글라스, 귀걸이, 액세서리, 주얼리 등


원숭이를 만지거나 잡거나 건드리지 마라.

그들은 당신을 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만지지 마라. 왜냐하면 그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 아기 원숭이가 있을 경우, 아기들은 무해할 수 있으나 엄마들은 방어적일 수 있다.


원숭이에게 땅콩, 쿠키, 캔디, 빵 혹은 어떤 종류의 스낵이나 음료수를 주는 것을 금지한다.

그들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원숭이에게 물건을 뺏기기 싫거나 공격당하기 싫다면, 들어가기 전에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경고문 같은 안내문을 봐서 그런지 입구 들어가기 전부터 두근두근했다. 원숭이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날 덮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조심조심 한 걸음씩 떼다 보면...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원숭이를 만나게 된다. 바로 옆을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괜히 서운...?)




길 한가운데에서도 원숭이를 만났다. 이 원숭이는 코코넛을 아주 힘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인지 사람들이 주변에서 알짱거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털 고르기 해주는 원숭이들
그냥 길 같아 보이는 곳도 자세히 보면 원숭이가 있다...!



발걸음 닿는 곳곳마다 원숭이를 만날 수 있었는데, 누가 봐도 연륜이 느껴지는 원숭이부터 아기 원숭이, 청소년기에 접어든 것 같은 원숭이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몽키 포레스트가 힌두교의 철학을 담고 있는 곳인 만큼 곳곳에 사원도 있었다. 역시나 그곳에도 원숭이들이 많았다. (외국인들은 사원 안까지는 입장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힌두교 신도들이 기도하러 들어가는 곳인 것 같았다. 정확하진 않다.)




어디선가 계속 첨벙첨벙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 물 웅덩이 같은 곳에서 아주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원숭이들이 물 웅덩이 위에 있는 나뭇가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 원숭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는데 자기에게 다가오는 원숭이들을 가차 없이 아래로 떨어트렸다. 물에 빠진 원숭이 중에는 도망가는 애들도 있었고, 다시 나뭇가지로 올라가기 위해 점프하는 원숭이도 있었다.


나뭇가지로 점프하고, 싸우고, 물로 떨어지고, 도망가고, 어디선가 새로운 원숭이가 나타나서 배틀에 참가하고...!


잠깐만 보려고 했는데 너무 흥미진진해서 배틀이 끝날 때까지 계속 구경했다. 어찌나 격렬한지 원숭이가 물에 뛰어들 때마다 사방으로 물이 튀었는데, 이때도 원숭이들은 주변에서 구경하는 인간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간들에게 물이 튀든지 말든지, 구경을 하든지 말든지 자기네들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Sacred Monkey Forest Sanctuary (성스러운 원숭이 숲 보호구역)라는 이름답게 이곳은 자연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오래 산 것 같은 나무들도 많았고, 정자 같은 곳에는 박쥐도 자고 있었다...!







몽키 포레스트에 대한 후기를 검색해 봤을 때 원숭이에게 목걸이나 선글라스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원숭이 무서워서 몽키 포레스트는 안 갔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데, 원숭이 무서워서 '동물원'을 안 가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동물원에도 원숭이가 내 선글라스 뺏어갈까 봐 혹은 공격할까 봐 조심조심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동물원에 있는 그들은 단단한 유리벽 안에 갇혀 있을 테니까.



동물원에 가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원숭이가 '무서운' 동물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갇혀있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숭이가 의외로 힘이 세다는 사실이 은근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들의 민첩함과 점프력이 위협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지능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나부터 조심하게 된다. 조심조심 걷고 조용조용 말하게 된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며 "나도 너 괴롭히지 않을게, 너도 나 괴롭히지 마."라는 무언의 표시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렇게 나부터 조심하면 신기하게도 그들 역시 나에게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건 무관심 그 자체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나는 그들의 삶을 잠시 엿보는 대가로 비용을 지불한다. 그리고 내가 지불한 비용은 그들의 터전을 보존하는데 이용된다.



물론 파라다이스라고 볼 수는 없다. 분명 한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 사회에서,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은 이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니 난생처음이었다. 갇혀있지 않은 원숭이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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