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발리 비건 여행ㅣ우붓 한식 식당 '사투 망콕'
발리 우붓에 도착해서 나흘간 묵었던 숙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리조트만 덜렁 있던 곳이었다.
파이브 엘리먼츠 발리 리트리트에 대한 자세한 후기는 여기에
리조트 내에 플랜트 베이스드 (plant based) 레스토랑도 있어서 매일 아침 아주 신선한 과일과 비건 요리를 조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 자극적인 맛, 특히 매운맛이 그리워져서 우붓 시내에 적당한 곳이 없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누가 비건들의 천국 아니랄까 봐 비건 한식을 파는 곳이 있는 거 아닌가?!
Satu Mangkok은 '한 그릇'이라는 뜻의 인도네시아어라고 한다. 사투 망콕(이렇게 읽는 거 맞겠지..?)은 우붓 시내에 위치해 있다. (우붓 왕궁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 간판이 크지 않은 편이라 까딱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유심히 찾아봐야 한다.
1층에는 주방과 카운터가 있어 자리가 넓지 않았고, 2층으로 올라가니 다락방 같은 공간이 나왔다. 신발 벗고 올라가 편히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1층은 입식, 2층은 좌식) 한식 파는 곳답게(?) 벨도 있었다.
메뉴를 보니 한식만 파는 건 아니었고 다른 아시아 나라 음식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음식이라고 해도 짬뽕이나 우동 등 우리에게 익숙한 메뉴가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부분은 메뉴마다 비건, 베지테리언, 글루텐 프리, 치킨, 포크, 시푸드 표시가 되어 있어서 메뉴를 고를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사투 망콕의 비건 메뉴
오이 미역 샐러드
두부 샐러드
김치
반찬 세트 (3가지 코리안 스타일 사이드 디쉬라고 한다.)
두부 김치
잡채
두부 비빔밥
냉국수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김치가 비건이라는 것! (한국에서는 김치 담글 때 대부분 젓갈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건이 아닌 경우가 많다.)
김치볶음밥
* 베지테리언 메뉴였으나 달걀 빼서 비건으로 추정
김치와 두부김치가 비건인데 김치볶음밥은 베지테리언 메뉴였다. 아마 달걀 프라이가 토핑으로 올라가서 베지테리언 메뉴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달걀을 빼고 주문했다. 그랬더니 달걀 대신 튀긴 두부를 토핑으로 올려준 것이 아닌가!? (이곳은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은 것 같았다.)
심지어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외국이라 김치맛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맛있었다. 밥은 고슬고슬하니 잘 볶아졌고, 김치는 매콤 짭조름해서 은근히 매웠다. 너무 맛있어서 끝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떡볶이
*베지테리언 메뉴
떡볶이는 베지테리언 메뉴였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주문했다. (네, 떡볶이 사랑합니다.) 그런데 막상 떡볶이를 받아보니 왜 베지테리언 메뉴인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떡이랑 파랑 떡볶이 소스뿐인데...? (소스에 우유나 달걀이 들어가나?)
그런데, 떡볶이가 매워서 또 한 번 놀랐다. 웬만한 한국 떡볶이보다 매웠다...! (매운 것을 좋아하나 잘 먹진 못하는 내 기준)
한국이었다면 김치볶음밥과 떡볶이를 동시에 주문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겠지만, 외국임을 감안해서 매울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둘 다 주문했더니 뭘 먹어도 매워서 깜짝 놀랐다. (손님들도 서양인이 많길래, 떡볶이라고 해봤자 달달할 줄 알았지.. 김치볶음밥이라고 해도 밍밍할 줄 알았지..)
매운 거 먹고 싶어서 갔는데, 정말 제대로 매운맛을 맛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한 우리는, 다음날 또 방문했다.
냉국수
*비건 메뉴
오이와 미역, 시원한 국물이 있는 냉국수였다. 국물은 살짝 새콤한 간장 베이스 국물 같았다. 미역과 국수의 조합도 굉장히 좋았고,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도 일품이었다.
더위에 지쳤을 때 입맛 돋우게 해주는 새콤한 맛과 시원한 국물의 조합이라 뜨거운 우붓 날씨에 딱 좋은 메뉴였다.
김치 비빔국수
* 베지테리언 메뉴였으나 달걀 빼서 비건으로 추정
전날 김치볶음밥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또 김치 메뉴를 주문해 보았다. 김치 비빔국수에도 토핑으로 삶을 달걀이 올라갔는데, 이것 때문에 베지테리언 메뉴가 된 것 같아서 달걀을 빼고 주문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튀긴 두부를 토핑으로 올려줬다. (사랑해요, 진심으로)
그런데, 이 김치 비빔국수, 진짜 맛있다. 김치의 매콤함과 고추장 소스의 매콤 달콤한이 어우러져, 정말이지 최고였다. (논비건 친구는 이 메뉴를 이곳의 베스트 메뉴로 뽑았다.)
두부 비빔밥
*비건 메뉴
이곳에서 먹었던 것들이 다 만족스러워서 그냥 나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위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숙소가 우붓 시내와 꽤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한번 숙소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부비빔밥을 테이크 아웃했다.
각종 야채와 고추장, 튀긴 두부가 잔뜩 올라간 비빔밥이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생각 못하는 걸까? 저 튀긴 두부, 어디에 들어가도 맛있더라.)
스콜 쏟아지던 저녁, 객실 테라스에서 포장해 온 두부 비빔밥과 라면으로 저녁밥을 먹었다. 두부 비빔밥은 점심에 포장해 와서 저녁에 먹은 거라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식은 비빔밥 치고는 아주 맛있었다.
이 신라면 역시 비건으로 추정. 우붓 시내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신라면도 팔길래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Farmer's Heart라는 표시가 눈길을 끌었다.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채식이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성분을 봤다. 그랬더니 아무리 봐도 동물성 성분이 없는 것 같았다...!
먹어 보니 한국에서 파는 신라면이랑 맛이 좀 다르긴 했다. 신라면이라기보다 육개장(컵라면)에 좀 가까운 맛이랄까? 덜 매운 육개장 버전? 같았다. 신라면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스럽겠지만 그것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이 자체로 맛이 괜찮았다.
(그나저나 농심... 해외에서는 비건 버전 신라면 팔면서 한국에서는 안 파는 거야...?)
장점
맛있다!
맵다!
양 많다!
음식값도 비싸지 않은 편
직원분들도 친절하다.
단점
잘 모르겠다. 비건 메뉴 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정도?
비건 지향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붓의 사투 망콕은 한국에서보다 한식을 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한식의 한을 우붓에서 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