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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21. 2024

비, 좋아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재택을 하고 있는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일하는걸 참 좋아한다.

거기에 따뜻한 코코아 한 잔, 귀를 찌르지 않는 잔잔한 음악은 덤이다.


비가 나뭇잎 위로 톡 떨어지면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풀 내음 섞인 비 냄새가 난다.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어디든 간다. 물 맑은 계곡,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걸었던 청계천,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일 끝날 때까지 아빠랑 같이 기다렸던 작은 시냇물.


거기서 나는 아빠랑 함께 돌다리를 건너서, 맞은편 시냇가에 쭈그려 앉아 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냥 물 흐르는건데, 뭐가 그렇게 신기했는지, 물 위에 잎사귀 하나라도 떠가면 배를 상상했다. 손으로 물을 휘저으며 상상 속 그 배에 작은 파도를 만들어 위기 상황을 연출해 본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이 상황을 저 가냘픈 잎사귀가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보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었다.


또 모든 초등학생이 그렇듯, 나도 개미 보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 왕래가 별로 없는 시냇가에는 온갖 벌레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당연히 개미도 있었는데, 개미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찾게 되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뻤다. 그 개미떼 길목을 손가락으로 막아보거나 가는 방향 앞을 막아 방해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개미들은 더듬이를 세우며 조금 우왕좌왕하다가 포기한 듯 옆으로 비켜 간다. 그럼 그 뒤에 있는 개미는 그게 원래 길인줄 아는 건지, 앞 개미 동선을 따라 간다. 그런 뒤 손을 떼어내도 개미들은 옆으로 돌아서 가는데, 그걸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겁 많은 쫄보라 큰 벌레를 가지고 놀진 못했고, 조그만 개미 정도 갖고 노는게 나에겐 딱 맞았던 거 같다.

그때 그곳의 햇살이 우리 부녀에게 내리쬐는 정도, 아빠와 도란도란 나눴던 이야기, 바닥의 흙냄새, 맑은 시냇물 소리. 이런 것들을 가끔 상상한다. 그렇게 그때를 상상하다 보면 그 시냇물이 어디인지 찾고 싶어진다.

그러나 난 찾지 않을 거다.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은 초딩의 나에게 양보할란다.


이젠 비오는 날엔, 실내에서 빗소리 듣는걸 좋아하지만, 공연히 밖에 나가보고 싶은 날이 또 있다. 그러면 내가 가장 아끼는 연보라색 우산을 들고 산뜻한 기분으로 나선다.

우산 아래 서서 빗소리를 들어본다. 토도도독... 토독.. 토톡토도도독... 불규칙하지만 일정한 음고를 가진 빗소리를 듣다보면, 명상하는 기분도 든다. 거기에 내 마음대로 노래를 붙여보기도 한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엔 내가 아는 가장 빠르고 신나는 음악, 거의 다 그쳐가는 비라면 천천히 부를 수 있는 발라드.

마음 속으로 노래를 부르다 우산에 손을 갖다대 보기도 한다.

역시나 불규칙하지만 일정한 음고로 내 손에 토도독 떨어진다. 물의 감각을 느껴본다.


특별할 건 없지만, 새삼 글로 적어보니 다시 또 생생해지네.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섞어서 나의 현재 생각, 그리고 고민들을 여기에 털어놓으려고 한다. 어떻게 비춰질진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가장 솔직하게 털어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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