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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J Aug 30. 2022

제일 고생하고, 제일 부러운.

아마도 둘 다 맞는 말

"네가 제일 고생이다", "네가 제일 부럽다"

엄마와 시어머니가 요즘 내게 각각 하는 말씀이다.

이것보라고, 엄마와 시어머니는 다르다고, '역시 친정과 시댁은 같을 수 없다'는 결론을 새삼스레 내렸다는 말이 아니다.  

엄마 말대로 내가 제일 고생일 수도, 시어머니 말대로 누군가에겐 내가 제일 부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엄마는 아픈 엄마가 걱정되서 전화한 딸에게 되려 '라면 한 번 끓여보지 않는 몸 약한 막내'가 이 억만리 타지에서 애들만 데리고 고생을 한다고 날마다 걱정을 한다.

남편의 엄마는 며느리가 한국에 남은 이들의 고통에서 벗어나 보고 듣지 않아도 될테니, 공기 좋은 곳에서 포실포실한 손녀와 손자에게 밥만 잘 해주면 될 테니, 그런 내가 부럽다는 뜻이실테다. 의지했던 장남 며느리가 당신들을 돌보지 않고 떠났다는 상실감도 있을 테다.  

시어머니에게 아픈 엄마, 아픈 시아버지를 두고 와야하는 내가 마냥 좋기만 하겠냐고, 진정 그리 생각하시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을테니까.

시어머니 말대로 나는 황달로 들뜬 엄마 얼굴을,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시아버지 모습을 직접 보지도, 듣지도 않아도 되니까. 그 몫은 남은 사람들에게 넘기고 온 것이니까. 일견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더 이상 그런 말에 동요하거나 들쭉날쭉, 뾰족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할퀴고 남편에게 당신 어머니는 대체 나를 왜 몰라 주시냐고 하지 않기로 한다. 인정할건 인정해버리면 오히려 나으므로.


결혼을 하고는 장남인 남편을 따라 남편의 집, 그러니까 시댁을 더 많이 갔다.

바닷가 근처인 남편의 집을 갈 때, 기왕 가는거 놀러가는 마음으로 가자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 이제는 정말 그렇게 놀러가듯 가게 되었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 음식을 먹고, 바닷가에 산책도 가고, 무엇보다 한 가족이 되어가는 게 좋아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면 공항에 늘 시아버지가 마중을 나오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나는 시아버지가 아이들을 번쩍 들어올려 목말을 태워주고 내가 들던 짐을 당신 손으로 들어주고 다정하게 악수를 청해주시는 게 좋았다. 시어머니와 십 년 정도가 지나니 살림 못하고 손 끝이 야물지 못한 며느리를 그러려니 인정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도 시어머니를 편하게 여기게 되면서 실 없는 농담을 하고, 생각하고, 보고싶어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진심으로 시어머니의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그렇게 관계에서 오는 의무감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 이제는 시부모님과 있어도 때때로 늦잠을 자고, 누워있을 수도 있다. 내가 자고 있으면 불을 꺼주고, 일어나면 왜 더 자지 그러냐고 말씀하시는.

남편의 가족은 이 넓은 세상에 가족 뿐이라고 믿는다.


나의 집, 친정은.. 때로 무심하게 느껴질 만큼 독립적인 엄마 때문에 나는 자주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지 않았고, 본인의 일이 더 중요했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막내 손에 물 묻히는 것도 아까워서 내가 먹은 밥을 치우고 설거지 하는 것도 싫어했지만, 집에 돌아가면 자주 전화를 하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황급히 끊기 일수였다. 그래, 너 잘있으면 됐어. 라고 말하면서.

자매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면 좋지만 안 봐도 잘 있겠거니 하는.

간만에 친정에 가도  오래된  냄새만 맡으면 무장해제가 되어 바닥에 자동으로 등이 어버린다.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 자유.


나는 남편 집에서는 장남 며느리이고, 내 집에서는 막내딸이다.

그 역할과 분위기의 다름은 이 순간, 기러기 부부를 하면서 부모님이 아프신 그 순간에 결정적으로 드러났고 내 안에서 극심한 혼란과 다른 종류의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가족은 모든 것을 함께 해야한다고 믿는 시댁은 시아버지가 편찮으시고 나서 일상을 잃어버린다.

친정 엄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덜 최악인 요소를 애써 찾고 있다. 그러면 딸들은 정말로 이 상황-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이 최악이지만 '덜 최악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떨어져 있으면서

시댁을 생각하며 사실은 저렇게 나락으로 다 같이 빠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목이 죄어옮을 느낀다.

친정에 대해서는 실상 알아보면 더 최악이지 않을까 염려한다.   


이제 시어머니에게 이런 선택을 한 내 자신과 상황에 대해 애써 변호하지 않기로 한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에게는 내가 부러운게 사실일지 모른다.

다만, 나는 엄마 말대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하기로 한다. 내 신경의 95% 쯤은 한국에 아픈 엄마와 시아버지, 힘든 남편에게 가있어도 남은 5%로 버텨내야 하고, 여전히 모든 것을 '이 억만리 떨어진 이 곳에서' 나 혼자 해내야 하니까.

엄마에게 딸인 나는 그렇게 여겨지고,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인 나는 또 그렇게 여겨질 것이다.


 지금은 격하게 저항하고 나를 항변하는 것보다 처한 상황과 시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그리고 마음만은 함께 하면서도 일상을 살아내기로 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해 있을 땐, 가족과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하지만 구성원 각자는 또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단다. 라는 내가 몸소 배운 삶의 한 자락을 나는 내 아이들에게, 후대에게, 가르치리라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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