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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J Sep 01. 2022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있어주면 안 될까?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가 있던 그 자리에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부모님이, 형제가, 아이들이, 친구가, 일이, 공부가, 돈이, 그리고 지금 나는 광활한 자연이.

우리는 이렇게 참 많은 역할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던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지지를, 편안함을, 그 모든 좋은 것들을.

함께 살 때 우리는 마치 커다란 실뭉치로 묶인 '하나'였다면,

지금은 그 실타래가 풀려 가느다란 실을 서로의 손에 묶고는

저 멀리 떨어져 주변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그 사이에 들어선 느낌이다.


습관처럼 누르던 서로의 전화 번호 대신 근처 사는 친구의 번호를 누른다.

세상 반대편에서,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지 못하는 우리는 서로를 찾지 못한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도, 내 평생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어도

'전송'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한다.

나와 다른 시간대에, 다른 공간에 있는 남편에게 행여 다른 마음으로 전해지지는 않을지 두려워하면서.


그 거리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나는 남편이 "자기야 어디니?"하고 다정하게 묻는게 좋았다.

내가 밖이라고 하면 남편은 퇴근 후 부랴부랴 나와 아이들을 데리러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뜬금없이 내가 보고싶다고 하면 "퇴근 후 oo에서 만날까?"하고 묻고 함께 맛난 것을 먹거나,

시장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오뎅이라도 먹고 가곤 했다.     

떨어져 있는 지금은 서로가 어디에 있어도, 보고싶어도 만날 수 없으니까

남편은 내가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그 거리감은 우리 둘이 만들어 낸게 아닐까.


가족들이 보고싶을 때 아마도 남편은 부모님을 찾고, 형제를 찾고, 일에 더 몰두했으리라.

남편이, 아빠가 보고싶을 때 미국에 있는 우리는 공부를 하고, 지식과 기술을 더 익히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로 나가, 끝도 없는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아빠가 있을 자리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닷물 색깔, 소리, 다른 생명체, 모래, 나무, 자연의 냄새를 담을 것이다. 나 역시 남편에 대한 마음과 그리움을 자연에 조금은 내려놓을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인 것이다.


생각해본다.

서로가 제 자리에 없어 그 자리에 세워놓은 것들 대신 다시 우리가 세워지면 안되는걸까?

보고싶으면 보고싶다 말하고,

그리우면 그립다 말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 말하고.

시간대가 언제이든 어떤 상황이든 눈치보지 않고 말하고, 사진을 보내고, 목소리를 듣고.

시간과 공간을 핑계삼아 다른 것을 채워넣지 않고,

여기 없지만, 그리고 시간은 다르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말하다보면

"자기야 어디니?"하고 물으면, "보고싶어, 만나자!"하고 답할 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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