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의 종이 모자
- 안창호
봄맞이 대청소로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리 손주들 유치원 졸업 앨범이 나왔다. 먼지를 털어내며 펼쳐지는 페이지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아, 그때 그 시절, 손주가 돌잡이에서 의사봉을 잡았던 일과 학사모 쓴 유치원 졸업의 순간이 겹쳐서 생각났다. 돌 축하객도 “아무개 커서 판사나 박사 되겠네.”라 덕담하며 내 일처럼 좋아해 주셨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태어난 목적을 찾는 순간이었다.
타임머신을 탄 내 머리는 유치원 졸업식의 작은 학사모가 오늘의 나에게 무언의 암시를 재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유치원 학사모를 쓰고 서 있는 그 모습은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은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약속이다. 학사모 아래 숨겨진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작은 가슴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뛰고 있다. 이 모자는 단지 머리를 덮는 장식품이 아니라, 아이의 꿈을 지지하고, 배움의 길을 인도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으며, 아이는 그 모든 것을 품으려 한다.”라고.
돌잡이에서 의사봉을 잡았던 순간부터, 유치원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여정은 아이가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진 씨앗이 조금씩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며 우리는 미래의 지도자를 상상했다. 이것은 내가 학사모 쓴 꿈나무 손주의 희망과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뜯어보는 계기가 됐다.
곁에 있던 아내도 힘들었던 육아 시절이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유치원 졸업식장, 아이들은 작은 학사모를 쓰고 한껏 들떠 보이고,
그 모습에 할머니의 눈가가 노을처럼 붉어지고,
손주의 깔깔 웃음 속에 지난날의 수고로움이 스쳐 지나가고,
육아의 힘든 시절이 눈물로 흐르네.
그 작은 어깨에 걸친 학사모가 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아이는 아직 모를 거야.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할머니의 무한한 애정과 희생의 기록이 담겨 있어.
그리고 이제 손주도 자라나 세상의 큰 무대로 나아가네.
할머니의 눈물은 곧 기쁨의 눈물로 바뀌고,
그 작은 학사모는 마음도 쑥쑥 커가는 성장 징표가 되어주리라."
그날 저녁상을 물리고, 손주는 신문지를 접어 종이 모자를 만들어 후투티의 화관처럼 덮어쓰고 임금님 놀이를 했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종이의 변신은 마법과도 같았다. 한 장의 평범한 신문지가 손주의 웃음소리와 함께 접혀 가면서, 임금님의 면류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그 작은 종이 모자 하나에 온 세상의 기쁨이 담겨 있는 듯하였다.
“할아버지, 봐요! 저도 임금님이 됐어요!” 손주의 목소리에는 신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작은 임금님 옆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