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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원 Mar 28. 2024

손주 사랑, 손주 바보

 손주 사랑, 손주 바보

                                          - 안창호 -


 대전 사는 딸이 카톡으로 사진 2장을 짧은 사연과 함께 보내왔다. 

‘우리 할머니’ 가 대전 손주 집에 오셨다. 

요즘 사부인께서는 마흔이 훌쩍 넘어 결혼한 서울 딸 집에 올라가서 3살 외손자 육아 중이다. 정희의 고종 동생인 ‘지한’ 이름이 입에 익었기에 정희를 부른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외손자 이름이 툭 튀어나왔는가 보다. 그랬더니 정희는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머물면서 도화지에 자기 이름을 그리듯 커다랗게 써 이마에 사진처럼 턱 붙이고 할머니가 계시는 식탁으로 나왔다. 

“할머니 제 이름은 0정희입니다. 바르게 불려주세요.”라는 분명한 자기 의사를 전달한 것이었다. 

6살 정희는 미안하고 무안한 마음이 드실 할머니께 마음의 상처를 드리지 않고 할머니를 배려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잘 대응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바른 태도와 똘똘한 생각을 가진 손녀를 크게 칭찬했다.

아내도 손주 육아 때, 외손자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내 아들 이름을 불쑥 불러 계면쩍은 적이 자주 있었음이 겹쳐 생각나서 고개를 끄떡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때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아내도 “정희야 참 좋은 생각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할머니께서 깜짝 놀라시고 너의 예쁜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실 거야.”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이름 소동 말고도 이런 일도 있었다. 추석 때, 외가에 온 손녀는 유치원 선생님 따라 ‘퀴즈 놀이’를 시연한다고 온통 난리를 피웠다.  낱말카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칠판 대용 거실 TV 화면 위에 나란히 붙이고 관객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오빠를 바닥에 앉혔다.

 

 나는 손주의 진행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으며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다는 유치원 교육활동이 성장 재롱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발 빠르게 삼각대를 세워 동영상을 촬영해 여러 번 되돌려보았다. 

내용 중 하나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할미는 자신 있게 손을 들며 ‘엄마밥’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였다. 그런 말을 툭 뱉어낼 줄은 꿈엔들 생각 했겠냐. 

자신의 카드 속 답 ‘비빔밥’이 아니니 노소에 상관없이 과감하게 내팽개치는 단호함에 또 한 번 놀랐지만, 마음도 쑥쑥 커가는 모습을 헤아릴 수 있어서 가슴이 따뜻했다. 순간 귀중한 손주들의 선물 같은 성장 자료가 하나 더 보태졌다. 

 

 어찌 보면 부모 다음으로 안전한 양육자가 조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 부모 입장일 것이고, 조부모 당사자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황혼 육아를 피하고 싶어 손주 돌보기를 거절하는 어른들도 있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손주 양육을 떠맡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육아로 힘들어하는 내 자식들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흔쾌히 손주 돌봄에 할애하였다. 유경험자로서 자신 있게 외친다. 만약 손주의 육아를 맡게 되었다면,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면 천칭 저울처럼 보람과 행복이란 균형 잡힌 열매가 찾아온다.

손주 사랑, 훌쩍 자란 손주들과 함께하라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네 손주가 너무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아직도 외가에서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마다 “할머니, 꼭 일등으로 데리러 오세요.”를 입에 달고 입구로 들어가는 손주의 뒷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감겨서 지나간다. 


    *우리 할머니 = 친조모, 우리는 구미 송정동에서 같은 단지에 함께 생활하며 황혼 육아를 할 때 본가와 외가를 구분하는 것이 달갑지 않아 그렇게 부르자고 손주들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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