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이 광고대행사를 떠난 이유

AI와 일하며 재도약중

by gai

새벽까지 켜져 있던 PC 화면


건조한 눈, 잿빛으로 변한 메이크업, 어두운 사무실.
저 너머 다른 팀에서도 누군가 야근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자켓을 벗어던지고 반팔만 입은 채, 데스크 위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들.
몸살처럼 무섭던 피곤함이 아직도 떠오른다.


나는 ‘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해, 팀장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임원들에게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했다.


결과물이 나오면 뿌듯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결과는 좋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가는 말들은 종종 잔인했다.


“이거 인턴이 만들었나요?”
“피곤하니까 더 얘기하지 맙시다.”
“이걸 어떻게 보고해요?”
“짜증 나니까 메일로 보내세요.”
“내일 아침까지 보고할 수 있게 해주세요.”


????


본인이 띰을 던지고 본인이 컨펌해놓고 어디가서 얻어맞고 얘기하기도 한다.

어디 10년전 얘기냐고? 아니 2년전이다.. 그리고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술자리에게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제가 그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위에서 하도 뭐라고 하니까 액션 취하는 거에요

죄송해요. 저 팀장님 너무 좋아해요.


아, 예. 그럼 다음 캠페인 계획은~~ (감정외면 스킬)


대부분 대기업 대리 과장 차장 급.. 그래, 광고대행사에서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그런데 그런 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재밌는 건, 나는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내가 부족하니까 채워야지” 하고.


팀원들 앞에서 솔직하지 못했다.
그저, 까불었다.
“내부에서 급하시단다. 해결할수 있는 우리가 해주자. 끝나면 소고기 먹즈아”
미안함과 고마움에 간식과 작은 선물들을 사들였고, 팀원 아이디어를 모아 퇴근시킨 뒤,
그 다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됐다.

그때의 나는 남의 브랜드를 위해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사람이었다.
주말도, 연휴도 없었다. 늘 PPT였다.


퇴사 1년 전쯤, 성격이 조금씩 변했다.
“못하겠습니다”, “왜 우리랑 하려는 겁니까?”, “갑질을 멈춰주세요”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너무 좋았다.


10년 가까이, 나는 겸손이라는 이름의 방패 뒤에 숨어 있었다.

늦게 시작한 업계였기에 “나대지 말자, 배워야 한다”라며.
그런 내가 어느 순간, 아직 내가 생각하는 완벽에 가까이 가지 못했음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단지 나와 팀원들이 살기 위해.


완벽주의자였던 내가,
답이 없는 프로젝트 속에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수주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버텼다.
돌이켜보면, 혼자만의 인간승리였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승리..



프리랜서 3년 차, 자유와 불안 사이

광고대행사를 떠나 1인 사업자가 되던 날, 담담했다.

불안함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다만 홀가분함은 확실히 느꼈다.


야근 압박 메신저도, 갑질 피드백도,
주말 없는 회의도 사라졌다.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불안함은 짝꿍이라더니.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공존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
매달 달라지는 수입, 혼자 짊어져야 하는 책임.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자유와 불안은 늘 짝을 이뤄 다가왔다.


사람과 일 속에서 분노와 열정에 몸서리치던 시간과 달리,
이번엔 고요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불안이었다.

“이거 괜찮은 걸까? 나, 괜찮은 걸까?”



AI, 새로운 동료

프리랜서로 1년을 보낸 후, AI를 일에 본격적으로 대입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아직 낯설었다.

‘이게 진짜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문서를 함께 만들며 깨달았다.
AI는 자료를 정리해주고, 초안을 제시하고,
내 피드백을 반영해 다시 수정하는 든든한 동료였다.


20~30분이면 러프 버전이 손에 잡혔다.
나는 방향과 뼈대를 다듬는 데 집중했다.


예전 같으면 책상을 두드리며 울던 일이,
AI와 티키타카를 하며 웃는 일이 되었다.


AI는 내 손을 대신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빠르게 정리해주는 파트너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업무 속도와 퀄리티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상승했다.



대한민국의 일하는 방식은 어디로 가는가

광고대행사의 ‘과로·압박 모델’,
프리랜서의 ‘자유·불안 모델’,
그리고 그 사이에 등장한 AI 협업 모델.


나는 이것이 단순한 개인 경험을 넘어
대한민국 노동과 창의력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성과=과로라는 낡은 방정식에 묶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각자도생의 자유와 불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AI는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선택지를 열어주고 있다.



타인의 목표가 아닌, 나의 방식으로

돌아보면, 나는 늘 타인의 목표 속에서 살았다.
클라이언트의 목표, 회사의 목표,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


하지만 영혼이 원하는 건 달랐다.
성취의 모양새가 아니라,
내가 편안한 상태인지,
나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표는 그릇된 목표다.
그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 뿐,
내 영혼에는 불편함만 남긴다.



오늘만 산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목표에 맞춰 살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작성한 노예계약서는 찢어버리고,
게임 속 캐릭터처럼 자연스럽게 승리를 쟁취하듯,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산다.


내일도, 모레도, 3년 뒤도, 5년 뒤도 아닌
오늘만 산다. 힘들면 다시 다짐한다.
“오늘만 살자.”


과로와 불안의 양극단에서 벗어나,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의 방식을 찾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단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일하는 방식은,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영혼이 편안한 리듬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