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면 기분이 좋크등요-삶을 통제하겠다는 의지
0.
거주공간의 상태와 이를 만들어내는 청소는 마음을 투영한다.
1.
청소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저장강박증(디오게네스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정리정돈을 못한다. 이들은 우울지수가 높고 집중력이 약하며,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 근본적 이유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불안이다. 가족간 유대감과 애정을 통해 안정감이 회복되면 저장강박도 사라진다고 한다.
주의집중력결핍장애(ADHD)의 경우에도 정리정돈에 취약하다. ADHD 환자는 대부분 불안장애를 같이 경험하는데,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이 높아질수록 정리를 하지 못한다.
(참고 : 나는 왜 청소에 집착하는가? - 내 삶의 심리학 mind (mind-journal.com))
(나만 보아도) 불안한 상태의 개인은 청소하지 않는다. 목표나 희망이 생기고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고자 할 때에 드디어, 청소를 시작한다.
2.
2022년 1월에 나는, 매일 청소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생기고 불안해질 때마다 집안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불안은, 직장과 가정 어디에도 안정감을 두지 못하는 상태(그러니까 40대 비정규직 미혼여성)이면서
ADHD를 가지고 있어서 유발된 것 같다.
옷장에 걸면 되는데도 옷을 벗어서 방바닥에 두었다. 며칠 째 물에만 설거지 거리를 담가두었고, 재활용거리 들을 쌓아놓았다. 발로 물건을 쳐내야 하는 어지럽혀진 상황에서 새로운 물건을 어찌나 많이 사들였는지, 하루가 머다하고 택배상자가 쌓여갔다.
4월은 2022년 들어 거주공간의 상태가 가장 최악이었다. 설거지 그릇을 쌓아두고는 몇 주째, 청소해야지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퇴근 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입은 옷을 벗지도 않고 잠이 들었고
아침에는 무기력에 허우적대다가, 출근시간 임박해서 겨우 출근을 하는 것이 고작.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또는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무엇이 이렇게 계속해서 무기력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을 하기 싫은 것일까?
3.
이번 주에는 며칠에 걸쳐, 겨우겨우 청소를 했다.
대부분의 물건을 버리고 팔고 정리했기 때문에, 작은 거주공간에 여유가 생겨서
조금만 움직이면 깨끗해질테지 싶어 청소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오늘 오전에는 몇 달을 벼러온 카펫트 세탁도 했다.
동기를 부여하고 움직이는 게, 물에 잠긴 이불을 건지듯 몸을 움직이는 것이 무겁고 벅차지만,
아주 미세하게 나아가고 있다. 어쨌든 꾸역꾸역 하고 있으니까.
아주 간만에 손세차도 할 것이다.
4.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실망때문에 노력과 기대를 포기하고, 그러다 무기력에 빠진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아무것도 슬프지 않지만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물에 잠기듯, 땅에 파묻히듯, 무기력과 우울과 슬픔의 움막에 들어선다.
따뜻한 봄이고, 아직 살아있으니, 나는 이 오래된 습성을 버릴 것이다.
추운 겨울이고, 죽음이 다가온 시기에도,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