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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경 May 10. 2022

2022년 비움기록_05. 템플스테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아무일도 생기지 않아

0.

휴일을 맞아 2박 3일간, 오랫동안 생각으로만 그쳐왔던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1.

깊은 산 속에 위치한 큰 절, 3일동안 입을 넉넉하고 편안한 옷, 깨끗하고 작은 한옥방.

정갈한 작은 방에는 요와 이불을 넣은 장과 낮은 탁자만이 놓여있었다.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이 정도의 공간은 마련할 수 있겠다, 싶은..


2.

첫날은 크고 넓은 젋을 구경하고,

예쁜 나무와 경치에 감탄했다.

수백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저녁예불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울고 있지, 남들이 보면 사연있어 보이겠다, 라고 틈틈이 생각하면서 

나무 아래서 몇 시간을 울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새벽예불에 맞춰 일어나 다시 나무아래 앉아,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수천개의 별을 보면서 또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자다가 걷다가, 방을 정리하고 집에 왔다.



3.

어른이 되어 안좋은 점 중의 하나는,

더이상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해결해야할 자신의 문제로 다들 버거운데, 불필요한 마음의 부담을 주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해결능력도, 마음도 어렸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수백년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나무들이 듬직하고 선하게 느껴져서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백제, 고구려, 신라, 조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나처럼 쪼그리고 앉아 우는 사람을 수만명은 봤을테이 말이다.


4. 

이상하게 절에서는 배도 고프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쉽지도 않았다.


무엇을 비우겠다, 라고 다짐한 것이 아닌데도 

해묵은 감정, 서러움, 불만, 두려움, 막막함 이런 감정들도 조금은 버려진 것 같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고,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는 작은 방 한칸 정도를 점유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5.

비움의 삶에 자연과 명상, 기도와 신앙은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아직 마음이 많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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