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짧은 소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바다에 갔다. 아빠도 함께 했다. 엄마랑 아빠랑 나는 바다로 가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휴게소에 들러 소떡소떡도 먹었다. 온몸에 자꾸 소름이 돌만큼 행복했다. 바다에 도착한 후로는 양손에 엄마와 아빠의 온기를 느끼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화장실에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아빠는 그 사이 적당한 자리에 텐트를 쳤다. 엄마는 아빠의 품으로 나는 바다로 달려갔다.
파도가 치는 바다와 점점 가까워졌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런데 나는 바다랑 놀기가 무척 어색했다. 왜냐하면 그 바다에는 나밖에 노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분명 무척 행복했는데, 왜 이 놀이터 앞에는 놀 사람이 나밖에 없을까. 친구가 보고 싶어 졌다. 찰랑찰랑 자꾸 나를 치는 파도 앞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친구는 없었다. 엄마가 왜 놀지 않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만 내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 순간 왜 나는 화영이가 생각이 났을까. 걔가 옆에 있었으면 했다. 나는 화영이가 싫은데.. 화영이가 왜 보고 싶었을까. 화영이는 자꾸 나를 치는 이 파도처럼 나에게 왔다. 나는 그런 화영이를 자꾸 밀쳐냈다. 화영이가 선생님한테 혼났으면 했고 화영이가 곤경에 처했으면 했다. 화영이가 난처해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화영이랑 놀 때면 걔는 늘 나에게 양보를 했지만, 나는 그걸 이용해서 걔를 골탕 먹였다. 그럼에도 화영이는 나와 놀기를 원했다. 왜 그러냐고, 같이 놀자고 그게 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친구와 편을 먹었고, 그러면서 화영이가 혼자 있길 원했다.
넓은 바다 앞에서 내가 느끼는 이 불안함을 화영이도 느꼈을 것 같다. 나는 왜 네가 싫을까. 이유를 모르겠다. 네가 좋지 않으면 내가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화영이가 싫지만 그럼에도 화영이가 필요했다. 어른이 되면 이 알쏭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빴지만 내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설마, 작년에 나를 괴롭히던 하영이와 이름이 비슷해서 네가 싫은 건 아니겠지. 나의 이유와 상관없이 나에게 놀자고 다가오는 이 파도처럼 나에게 와줄 화영이가 보고 싶어 졌다.
나는 무릎만 젖은 채 엄마, 아빠 품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엄마는 왜 놀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빠는 그냥 여기서 바다만 봐도 좋다고 나를 앉혔다. 나는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쳤고 나에게까지 오진 않았다.
- 화영이가 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엄마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빠는 그런 나를 그냥 꼭 안아줬다. 아빠의 품에 안기자 나는 눈물이 났다. 눈물을 닦으려고 팔로 비비다가 입에 들어갔는데 짠 내가 났다. 바닷물도 짜다고 하는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것도 가족들과 놀다 온 화영이가 알려준 거였다. 엄마는 우는 나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 혜민아 왜 울어?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척이나 서글펐다. 나도 잘해보고 싶은데 삐뚠 내 마음이 너무 싫었다.
- 화영이 만나면 뭐라고 하고 싶은데?
나는 숨이 찰만큼 더 서럽게 울었다. 아빠는 나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잠시 서럽게 울다가 엄마가 물은 답에 얘기를 하고 싶어서 울음을 그치려고 노력했다. 울음은 그쳐도 숨은 계속 찼다.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말을 할 때까지 계속 기다려줬다. 나는.. 나는..
내 사정과 상관없이 파도는 계속 쳤다. 바다는 계속 있었고 사람은 계속 오고 갔다. 화영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는 화영이에게 진심을 다한 말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네가 싫을까? -2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비하인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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