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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 Mar 23. 2022

아빠가 주워온, 캠핑 괴담

가끔 사람들이 나한테 귀신 보느냐고 물어보는데, 귀신 본 적은 커녕 가위 눌린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썰 하나가 있다. 이름하여 캠핑 괴담.


그 날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거창'이었다. 그곳을 향하는 차 안에서는 이번에 정말 '거창하게' 놀고 오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엄마, 아빠, 오빠, 나. 그리고 이번에는 할머니까지 모셨다. 


캠핑장은 산 속 깊은 곳에 있었다. 길을 곧잘 찾아 들어가는 아빠인데, 그 날따라 산 속에서 뱅뱅 돌면서 영 목적지를 못 찾았다. 해는 이미 다 졌고, 컴컴하다 못해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 그렇게 한 시간쯤 헤맸나. 잠시 차에서 내려보기로 했다. 


아빠는 여기 저기를 훑더니, 도저히 못 찾겠다며 예약한 곳 말고 일단 아무 캠핑장이나 들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운 좋게 슬리퍼를 하나 주웠다며 나에게 건네었다. 캠핑할 때는 슬리퍼가 필수인데, 그 날 내가 슬리퍼를 안 들고 왔었던 터라 ...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핑크색 슬리퍼였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아주 쨍쨍했다. 기왕 이 캠핑장에 돈 낸 김에, 오늘은 여기서 물놀이를 하고 밤이 되면 원래 예약한 곳으로 넘어가기로 하고. 아빠와 나는 잔뜩 신이 나서 신속하게 물놀이 준비를 하다가, 아차. 아빠는 내 슬리퍼가 아직 차에 있다며 주차장에 같이 가지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왜인지 가고 싶지가 않았다. 단순히 "귀찮아"가 아니라 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아빠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했지만, 평소에 당신따라 어디든 졸졸 다니는 나였기에 아빠는 계속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결국 같이 주차장으로 향했고, 그곳은 흙이 아닌 돌을 쌓아 만든 곳이었다. 오르막길에 주차된 우리 차를 향해 한 발 한 발 올라가다가, 순간 어쩐지 더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또 강하게 들자마자 난 멈춰섰다.


"아빠 나는 여기 있을게. 여기서부터 아빠가 혼자 다녀와"


아빠는 차 트렁크를 열어 슬리퍼를 수색했고, 난 그런 아빠를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 당기는 게 아닌가. 사고는 순식간이었고 정신차리고 보니 내 무릎이 다 찢어져, 좔좔 흐르는 피가 다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무릎 안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보였다.




가물한 기억이지만 한참을 달려 일단 보건소를 갔다. 원래 신고 있던 신발이 피로 다 젖었기에, 아빠가 트렁크에서 가져 온 그 슬리퍼를 신고.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큰 병원들은 다 문을 닫았고, 제대로 된 치료는 받을 수가 없었다. 대충 보건소에서 무릎을 꼬매고 깁스를 했다.


물놀이 하러 간 곳이었는데, 그날 난 오빠의 물놀이를 구경만 했다. 많이 속상했는지 일찍 잠에 들었는데, 새벽에는 산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꿈인지 생신지, 우리 가족의 텐트 뿐만 아니라 같은 캠핑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깰 정도의 큰 소리였다. 


8중 추돌사고.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우리 가족의 차.




눈 비비며 흘깃 쳐다본 엄마 아빠의 표정은 심란했다. 무면허에 술까지 마신 대학생, 이제 곧 군대를 들어간다는 아저씨가 사고를 낸 것이었다. 특히 중간에 끼인 우리 가족의 차는 회생 불가한 수준으로 찌그러졌고, 그 새벽에 우리 엄마 아빠는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 차는 내 출생일에 맞춰 뽑은 카니발이었다. 나랑 생일도 나이도 같은 차. 

그날부로 폐차되었고 숨이 끊어졌다. 




난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슬리퍼부터 버렸다. 그 슬리퍼가 나를 해치기 위해 주차장에서 나를 밀었고, 튜브를 껴 구르지 않고 죽지 않자, 대신 나랑 같은 날 태어난 차를 해쳤다고. 그 차가 아니었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여전하다. 


이제는 우스갯소리로 아빠를 놀리는 데 쓰이는 썰이지만, 산에 갔을 때는 특히 주인 없는 물건은 주우면 안 된다. 왜 그 날, 슬리퍼를 가져 가지 않은 내 앞에 거짓말처럼 두 짝의 핑크 슬리퍼가 찾아 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 깊은 산골짜기에서.




그날 이후 우리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리 가족의 캠핑에 따라가지 않으셨다. 차가 폐차되어 택시에 온갖 짐을 싣고 한참을 달려 겨우 집에 도착한 일정은, 전혀 거창하지 않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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