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기 싫다.
일어나면 혈당을 재야 하니까. 아니, 혈당을 재는 것 자체보다 사실은 또 공복혈당이 높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내가 당뇨라는 사실은 딸을 임신했을 때 이미 알았지만 지금까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당뇨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시급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더이상 당뇨를 모른 척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이후, 내 일과는 언제나 혈당 측정과 함께하고 있다.
딸이 배고프다며 계란 볶음밥을 주문해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일어난 김에 혈당을 쟀다.
121. 121mg/dl이다.
어플에 입력하니 정상 범주라고 나를 다독여줬다.
하지만 인터넷은 정상 공복혈당 범위는 70에서 100사이라고 알려줬다. 놀리는 거야, 뭐야.
오늘은 출근을 안 하는 금요일이다.
남편은 출근했고, 방학을 맞은 딸은 옆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냉장고에 언 밥을 꺼내 해동하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6개 꺼내 함께 볶았다.
계란 볶음밥은 내게 참 감사한 음식이다. 이거 하나면 딸의 끼니를 무난하게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먹을 수 없다. 탄수화물을 기름에 볶은 음식이라 혈당을 바로 올려줄 거다.
얼마 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아침밥으로 즉석 짜장에 밥을 부어 먹었더니 혈당이 가파르게 올랐다.
냉장고에서 방울 토마토를 꺼내 씻어서 침대로 가져갔다. 누워서 딸이 보는 유튜브를 함께 보며 한 알씩 입에 넣었다.
토마토는 참 좋다. 맛도 좋고 혈당에도 좋다. 토마토야, 사랑해. 영원히 나랑 함께 해 줘.
500g짜리 방울토마토 한 팩을 다 처리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아니, 할 일은 많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저 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당뇨인은 그럴 수 없다. 어거지로 스테퍼 위에 섰다. 핸드폰으로 인강을 튼 채로 천천히 스테퍼를 밟았다.
재미가 없다. 너무나 하기가 싫다. 10분도 안 되어 꺼 버렸다.
나의 의지력은 대체 왜 이리 하찮은 걸까. 개미나 지렁이만도 못한 것 같다.
1시가 넘었으니 점심을 먹어도 될 것 같다. 원래 식전 혈당을 재야 하는데 귀찮아서 넘어갔다.
오전에 만들었던 계란 볶음밥과 어제 먹고 남은 돼지양념구이, 엄마가 보내 준 열무 김치.
진수성찬이다. 적어도 혈당 관리 중인 나에게는 그렇다.
혈당을 매일 측정하기 시작한 이후 쌀밥은 내게 주적이 되었다.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딱 끊었다.
달콤한 과자 한 개에도 혈당이 널뛰는 몸이라는 것을 자각한 이후부터였다.
먹고 1시간 후 혈당을 쟀다. 114. 114? 굉장한 쾌거다.
저녁에는 라면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부푼 기대감을 가진다.
남편이 퇴근하자 바로 신라면 두 개를 끓였다. 속으로는 조마조마해하면서.
라면을 먹고 나니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1시간동안 기다리고 다시 혈당 측정. 134라니.
오늘은 혈당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왔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여전히 내일이 두렵다. 내일 아침 혈당이 어떻게 나올지, 또 어떤 유혹을 견뎌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을 잘 마무리한 것처럼, 내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신에게 고맙다고 속삭여본다. 그리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늘도 내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냈으니까.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두려움이 몰려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작은 성취감에 집중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매일 조금씩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다짐하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내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