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아이가 자연스레 어린이집에 가는 줄 알았다. 아니,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마터면 육아휴직을 1년 더 연장해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함을 느꼈다.
23년의 어느 봄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불과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어린이집 입소 대기를 신청해 두었다. 어린이집 입소가 걱정되어 서두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출생신고를 비롯하여, 아이가 태어나면 해야 할 체크리스트의 여러 항목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의 걱정은 미처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 문제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아기를 안아 드는 것조차 엉성했던 초보 아빠였으니...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입소는 'Out of 안중'이었다. 입소대기를 신청해 놓았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어느 어린이집에 대기를 신청해 놓았는지, 아이의 대기 순번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미처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정신없는 육아 라이프를 이어가기 바빴다.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부터 함께 산책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를 이곳저곳 오가다 보니, 종종 아이가 있는 엄마들과 인사를 하고 지내며 소소한 육아 정보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이따금씩 교류를 이어가다가 놀랄만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영유아가 많이 살기 때문에, 어린이집 입소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어린이집 입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은 설립주체나 규모에 따라 민간, 가정, 국공립 등 여러 종류가 있고,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또한 어린이집 입소는 대기를 신청한 순서대로 입소가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에 따른 점수를 합산하여 순번이 정해진다는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깜빡 잊고 지냈던 '아이사랑' 애플리케이션에도 접속해 보았다. ('아이사랑' 애플리케이션은 입소대기 신청, 보육료 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아뿔싸! 국공립 어린이집은 어디를 가더라도 매우 선호도가 높은 유형의 어린이집인데, 내가 대기를 신청해 둔 세 곳이 모두 국공립 어린이집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의 입소 순번은 정원을 훌쩍 넘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이라는 환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지만, 다른 선배 엄마들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더 늦기 전에 주변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에라도 서둘러 대기를 걸어두라는 것이었다. 물론, 가정 어린이집 입소도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하는 마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 곳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남겨둔 채, 두 곳의 대기 설정을 가정 어린이집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매년 신학기(3월)에 입소하는 원아는 전년도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확정된다고 하였다. 중간에 결원이 생기면 중간 입소도 가능하지만,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다고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아이의 입소 여부는 신학기 입소 확정시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사랑' 어플을 들락날락 거리며, 그저 조금이라도 입소 순번이 당겨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기만 하였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났다. 대기를 걸어두었던 한 곳의 국공립 어린이집 규모가 커지면서, 우리 아이가 입소할 나이대의 정원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는 대기 순번이 한참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끄트머리에서 문 닫고 입소 성공!!
그런데,분명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게 맞는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 이름 모를 어떤 아이의 부모도 이곳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를 간절히 바랐을 텐데... 끝 모르는 저출산의 시대라고 하지만, 막상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부터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의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모든 부모가 다 똑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바랄 테니, 나 또한 그리 믿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