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생명력을 생각하다
4년의 홀로 육아, 4년의 워커홀릭.
그 이후 나에게 찾아온 것은 세상에 대한 큰 분노였다.
미래의 수명을 깎아 지금을 사는 기분이었고, 가족 외 사람들은 다 지겨웠다.
이것이 번아웃이라는 건가?
“정말 격하게 쉬고 싶다!”
격한 휴식을 원했던 나는 결국 이직한지 1년도 안된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하면 돈 얘기가 따라온다. 맞벌이 부부와 8살 소녀까지 세 명이 우리 가족이었다. 남편은 운동선수 트레이너인데 1년여 전부터 처음으로 일반인 대상 재활운동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월급은 프리랜서처럼 운동 수업이 있는 만큼만 받고 있어서 금액이 일정하거나 3인 가족 먹여살리기에 그리 안정된 것도 아니었다.
가계 등을 생각해서 일을 놓지 않고 현명하게 병행하는 것을 꿈꿔봤지만, 당장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다고 생각했다. 번아웃, 소진된 채로 생명력 딸리는 아내이자 엄마가 벌어오는 돈에는 늘 피로가 묻어있고 어차피 나도 가족도 행복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내가 예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정말 아무데나 지원해서 3개월 일한 적이 있는데, 정신 차려보니 텔레마케팅 업무였다.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생판 남에게 전화걸어서 뭔가를 권유하고 욕먹는 일보다 힘들었던 것은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 몸에 세포가 움직이라고 소리치는 스트레스를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느낌은 정말 중요했다. 그 당시에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스트레스라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냥 어른이 되는 과정인 줄 알았다. 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보내는 신호에 점점 둔감해져 갔던 것 같다.
마지막 4년 간의 직장생활에서는 음주회식도 많았고, 야근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너무너무 많았다. 10인 내외 작은 회사에서 팀장역할을 하다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회식 아니면 야근이었다. 그러다 심장이 이상할 때가 가끔 있었다. 벌컥벌컥했다. 심장이 안에서 나를 퍽퍽 치곤 했다. 실제로 심장에게 팔다리가 있었다면 훨씬 아프게 때렸겠지. 적당히 좀 하라고.
주말에는 늘 정오까지 잤다.
직장인들에게 늘 따라붙는 목통증, 허리통증은 물론이고 무릎, 팔꿈치까지 시려왔다. 언젠가부터 대변 상태가 이랬다 저랬다 하고 피부도 늘 끈적거리고 혈색도 안좋았다. 화장을 안하면 창피해서 밖에 나가질 못했다. 구취와 체취도 강해지고, 몸에 붓기도 늘 느껴졌다. 30대 중반이 되어 못나졌나 하다가 수명을 깎아 오늘을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했고 일을 좋아했지만 ‘나’라는 온전함을 막 부숴가면서 성과내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회사에서는 ‘내 일’처럼 생각하며 일했지만, 결코 ‘내 일’은 아니고 사회적 역할에 불과했다. 그렇더라도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가 늘 주요관점이었는데, 경험에 대한 감도도 점점 떨어졌고 권태로웠다. 회사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해내는 편이었는데 그러는 내가 스스로 피곤하고 싫게 느껴졌다. 가장 아팠던 것은 체력소진으로 인해 아내나 엄마 역할까지 부족해졌다는 사실이었다.
휴식을 갈망하고, ‘나’라는 곳에 중심잡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임신 후 근육이 다 사라진 내 몸은 기력이 부족했다. 홀로 육아 시절부터 남편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늘 권유했다. 나도 필요성을 느끼고 2년 전부터 달리기를 종종 시도중이었는데,
동네 한 바퀴 뛰는데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에는 화가 올라왔다. 너무 하기 싫어서!
동네 한 바퀴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2024년 11월, 퇴사하고 한 달 동안 정말 계속 잤다. 낮에 자도 밤에 또 잠이 잘왔다.
자고 자고 또 자고, 눕고 눕고 또 눕고를 한 달 하니 허리가 너무 아파왔다.
아니, 쉬는 것도 간단하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