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용숙 씨(2)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를 주소서.
그런데 그에겐 이미 처자식이 있었다. 처와는 별거 끝에 이혼한 상태였고 자식들은 용숙 씨와 나이가 비슷했다. 시어머니 함흥댁은 터무니없이 어린 데다가 집안까지 가난한 용숙 씨가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러나 크게 대단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웬만큼 무시하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전처소생 딸과 아들들도 수시로 들락이며 용숙 씨를 무시했다. 집에서 부리는 사람들은 함흥댁의 눈과 귀가 되어 행여나 용숙 씨가 친정으로 살림살이를 빼돌리진 않나 틈틈이 감시하면서도 젊다 못해 어린 마나님을 있는 듯 없는 듯 대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이랬다. 그 고단함을 견뎌내는 과정 어딘가에 사랑도 있긴 했을까. 용숙 씨는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함흥댁은 대체로 용숙 씨를 무시했지만 이따금 옆으로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독한 것, 독한 것, 이라고.
언젠가는 함흥댁이 용숙 씨를 방으로 불렀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함흥댁은 용숙 씨에게 따로 집을 구해줄 테니 거기서 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용숙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갖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명확했다.
남편 태용 씨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잣집 장손인 그는 이미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다. 어쩌면 용숙 씨를 선택한 것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가져 세상이 질려버린 중년 남자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열망으로 가득 찬 어린 여자의 눈동자에서 삶을 발견했었던 것인지도. 태용 씨는 쉽게 가지고 쉽게 질려했다.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왔다. 한동안은 고급 술집의 마담과 내연하는 듯했다. 용숙 씨는 날을 잡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고는 남편이 근래에 즐겨 다닌 술집에 들러 마담을 불렀다. 어린 마나님의 행패를 예상하고 오만하게 나선 마담은 얼결에 두툼한 돈봉투를 받아 들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용숙 씨는 앞으로도 남편이 여길 들르거든 소홀함 없이 모시라 말하고 돌아섰다. 어딘가는 무너졌으나 꼿꼿한 걸음걸이는 당당했다. 어쩌면 여배우를 하던 경력이 그녀의 전신을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은 그 남자의 유일한 여자가 될 것이고 자신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를 가질 것이라고 그 믿음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때 용숙 씨의 나이가 그런 나이였다. 어쨌든 그 일 이후 마담은 꼬박꼬박 늦지 않게 태용 씨를 집에 들여보냈다. 실제로, 그 남자의 마지막 여자는 용숙 씨였고 그 끝엔 인간적인 신뢰와 애정이 있었으니 어쩌면 용숙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하나의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용숙 씨가 첫애를 낳았다. 딸이었다. 함흥댁은 계집애란 하등 쓸모없다고 말하면서도 이따금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모처럼만에 안아보는 어린애가 내심 귀여웠을 것이나 티 내진 않았다. 그래도 용숙 씨를 못마땅해하던 기색이 줄었다. 독한 것, 결국 내 아들에게서 자손을 보았구나.
아이를 낳은 용숙 씨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그녀는 무시와 경멸이 지속될 것을 예상하고 함흥댁에게 아이를 데리고 따로 나가 살겠노라 일전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쯤엔 함흥댁의 안에서도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던 것 같다. 함흥댁은 코웃음을 치며 되었으니 이제처럼 살라 했다. 그 뒤 용숙 씨는 아들을 낳았다. 함흥댁은 뒤늦게 본 어린 손자를 몹시 귀애했다.
용숙 씨는 함흥댁이 치매를 앓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내 보기엔 용숙 씨가 워낙 기가 세고 여장군 감이어서 시어머니한테도 할 소리 다 하고 살았을 것 같은데 시어머니를 대하는 용숙 씨의 태도는 음전했다. 내게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용숙 씨의 말투에선 존경과 그리움조차 묻어있었다.
용숙 씨는 늘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안되면 되게 만들었다. 삶에 멱살이 있다면 잡고 끌고 다닐 사람이었다. 물론, 강한 의지만으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순 없었다. 가난한 친정을 악착같이 일으켜보려 했으나 밑 빠진 독에 물만 한강처럼 부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용숙 씨는 가끔은 현명하고 때로는 어리석었다. 어떨 땐 격류를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가다가도 어느 순간엔 흐름에 몸을 맡겼다. 용숙 씨는, 나무기둥처럼 단단한 의지를 갖고도 갈대처럼 유연하게 사고했다.
나는 그런 용숙 씨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보다 어린 때에도 용숙 씨는 훨씬 용감했다. 자신의 꿈 앞에서 당당했으며, 시련 앞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나는 어둠이 두려워 한발 내딛지 못하겠는데 용숙 씨는 눈을 감고도 내달렸다.
나도 용숙 씨처럼 가끔은 무모하게 용감했으면 좋겠다. 내 시련과, 나를 해롭게 하는 모든 것들 앞에서 적당히 무모하고 뻔뻔하기를. 삶이 나를 속인다면 그 앞에서 속 시원하게 욕지거리라도 내지르고 돌아서 잊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