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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Jul 16. 2024

여름이 온다

세상은 온통 푸릇한데 당신의 여름은 겨울보다 추웠다

하얗고 젖내 나는 어린것이 작은 나무침대 안에서 버둥거린다. 아이의 눈앞으로 자동 흑백모빌이 빙글빙글 돌며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이의 눈동자가 흑백의 동물 인형들을 좇는다.

나는 그 모빌에서 흘러나오는 음률을 들을 때마다 그립고, 괴로웠다.


지독한 여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질 아이를 얻었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당신을 잃어버린 여름이 모빌처럼 빙글빙글 돌아왔다.


네 번째 여름이다.


세 번째 여름엔 당신의 영정사진을 태웠다.

그 영정은 삼 년 내내 침대에 누워 잘 바라보이는 자리에 있었고, 나는 거의 매일 어린 아기를 영정 앞에 데려가 당신에게 취침 인사를 건네었다. 그건 아빠 얼굴도 기억 못 할 아이에게 어떻게든 아빠를 심어주고 싶은 몸부림이었고, 내게도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남편이 있었다는 되새김질이었다.


영정을 태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이가 아빠 사진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아이 방에 애아빠가 작게 나온 사진이 걸려있긴 했다. 내 방에도 영정 말고 예쁜 사진을 뽑아 걸어두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왠지 아직 못했다.


당신을 되새기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당신의 부재를 상기시켰다. 나는 지금도 가끔 혼자 있을 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내 마음을 진정시키곤 하지만, 당신을 잃었던 초기에 당신을 떠올리며 받은 위안과는 다른 상실감이 내 깊숙한 곳을 찌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요즘 들어 내가 망가진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망가진 부분들을 붙잡고 어떻게든 추슬러보려 노력하지만 그 망가진 부분들을 고치려면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당연히 그 결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럼에도 내 생각의 흐름은 몇 번이고 그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만다.


삶이, 인생이 너무 길다, 고단하다...라고 생각한 찰나

만 네 살이 된  어린아이가 갑자기 내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엄마 슬퍼?

 엄마가 슬프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슬픈 마음이 들 거 같아. 슬퍼하지 마요, 제발..제발..


한없이 깊어지 우물 한가운데로 햇빛 같은 아이의 목소리가 닿는다.

하얗고 젖내 나던 어린것이 내 눈길을 좇는다.


이렇게 하루를 더 산다.




(사실은 얘야, 네가 엄마 말을 좀만 더 잘 들으면 하루 살 걸 이틀은 더 살 거 같다
    - 미운 네 살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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