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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14. 2024

노인들이 잘 노는 법

부산의 출장지 사무소는 시장 근처인데 근처 지하에서는 낮부터 음악이 흘러나온다. 뭔가 했더니 노인들의 콜라텍 같은 곳이었다. 노인 DJ가 틀어주는 옛날 음악에 맞춰 남녀 노인들이 춤을 추며 노는 곳이다. 반면 그 위에는 시장통 사람들이 치열하고 생생한 삶의 현장을 살아낸다. 그 광경이 너무 대조적이라 같은 공간의 딴 세상 같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노인이 되더라도 좀 다르게 노는 법은 없나 싶다.


요즘은 백 년 인생이라고 한다. 그래도 주변에 100세 넘긴 사람들은 희소하니 최소 80세 인생이라고 하면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사실 조문을 가면 고인의 나이가 보통 80세에서 90세 사이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이 이러하면 생애 주기에 문제가 생긴다. 현행 정규교육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20대 중반이다. 50대에 은퇴해도 앞으로 30년 정도를 더 살아야 한다. 재수 없으면 40년을 더 살 수도 있다. 재수 없으면 그렇다. 이제 사람들은 오래 산다는 게 꼭 축복이 아님을 안다.


사실 노인이 되더라도 치료를 못 받거나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 그 정도의 복지수준은 되는 나라이다. 대신 ‘그 많은 시간에 뭘 할 건데?’라고 물으면 답이 많이 궁하다. 매일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만 치고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결론은 잘 놀아야 한다는 얘기다. 노인들에게는 일보다 노는 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설령 일을 하더라도 놀면서 할 수준이어야 한다.


노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에 소홀하면 큰일 난다. 몸이 중요한 만큼 운동도 시켜주고 먹는 것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니 꾸준함이 필요하다. 먹는 것도 과음, 과식을 삼가고 과로도 피해야 한다. 그 나이에 몸 아프면 본인도 힘들지만 주변에 피해를 준다. 다음으로 시간 여유이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 조건은 충족할 테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돈은 어떨까? ‘돈이 있어야 논다’ 고들 하지만 이것도 뭐하고 노느냐에 따라 다르다. 운동을 해도 골프 보다 산책이면 돈이 안 들것이고 배움에 흥미가 있다면 주변 복지관이나 주민센터를 이용하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경로 할인도 많고 대중교통도 무료이니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노는 데는 그리 돈이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노인의 놀이는 이러면 어떨까 싶다. “일상의 루틴 위에 끌리는 프로젝트를 얹어 놀기”이다. 즉, 매일 반복할 것이 있고 그 위에 기간 내에 달성할 무언가를 정해 놀자는 것이다.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운동 시간을 확보하고 종교 활동을 가져보는 것은 단단한 일상의 루틴이다. 여기에 매주 한 권씩, 1년간 독서를 50권 하겠다거나 악기를 배워 연주할 수준을 갖추겠다 등은 프로젝트성 놀이이다. 눈이 침침해 책을 못 읽겠다면 오디오 북도 있다. 그리고 배움은 아웃풋이 있어야 동기가 생긴다. 괜히 젊은 사람 붙잡고 옛날이야기나 잔소리하지 말고 그 내용으로 책을 쓰거나 팟캐스트, 유튜브 등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변에 찾아보면 실버들을 위한 영상편집이나 스마트폰 활용법 등을 알려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못 한다고 할 것도 아니다. 이 시대는 디지털을 모르면 같은 공간 다른 시대를 살 수밖에 없다.


노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다. 젊었을 때 시간은 귀하고 노인의 시간은 의미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똑같이 개인에게는 귀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왜 노인이 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낼까? 혼자 지내고, 혼자 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인 것 같다. 찾아보면 혼자서도 할 게 참 많다. 혼자 있어도 좋고, 함께 해도 좋을 때 노인들은 좀 더 잘 놀 수 있을 것 같다.


ps.

자원봉사는 어떨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어느 노인이 있다면 좋아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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