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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Dec 13. 2024

지구를 떠나기 전에 잠시만

빛의 속도로 가는 로켓에 타려는 당신에게

A: 뭐 하니?

B: 지구를 떠나려구요.

A: 어디로 가려고?

B: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냥 떠나고 싶을 뿐이에요.

A: 왜?

B: 지루해졌어요.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 희망을 걸만한 구석이 없을 것 같고. 어차피 인간들의 욕망으로 기후위기가 되었건, 핵전쟁이 되었건 머지않아 인류는 멸망하겠죠. 먼 옛날 공룡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A: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어디로 갈지는 정하고 가야지 여행인거지 무작정 떠나면 그건 방황이 아닐까?

B: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여행이든 방황이든 중요한 건 지구를 떠나는 것이니까요.

A: 자, 그럼 생각해보자. 아, 우선 나는 네가 지구를 떠나든 머물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지금의 네가 아주 흥미로워 이러는거니 오해는 말아줘.

B: 네, 좋아요.

A: 네가 저 로켓을 타고 지구를 떠난단 말이지. 보아하니 빛의 속도로 갈 것 같은 로켓이네. 지구를 출발해 1시간 정도 지나면 아마 10억 Km 이상을 날아가 목성을 지나고 있을거야. 그것도 먼 거리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가보자. 로켓에서 24시간 후에는 259억 Km 를 날아 태양계의 끄트머리에 있는 해왕성은 넘어갔을테지만 여전히 태양계의 중력 영향은 받을거야. 아주 멀리 간 것 같지만 이건 역시 상대적이지.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의 지름 크기에서 보면 겨우 0.003% 정도 이동한 거리니까. 주변은 여전히 깜깜한 우주의 어둠에 싸여 있을테지. 지구라는 환경은 아주 드문 경우이니까. 뒤돌아보면 네가 떠난 지구는 아예 보이지 않을거야. 어둠속에 별들이 빛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테지. 어쩌면 너는 인간들의 소음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내일도 그리고 다음날도 계속 그런 상황이 이어지겠지. 좀 심심하지 않을까?

B: 그럴것 같네요.

A: 그리고 네가 아무리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이 은하계를 벗어나는데만 73,000년이 걸릴거야. 지구에서 은하계의 가장 가까운 가장자리가 그 정도라고 해. 말인즉 네가 살아생전에는 지구가 속한 은하계조차 못 벗어난다는거지.

B: 그래도 가는 도중 지구같은 아니면 더 좋은 정착지를 발견 할 수도 있잖아요.

A: 그럴수도 있지. 자, 운좋게도 그런 정착지를 하나 발견했다고 치자. 넌 뭘 할 것 같으니?

B: 글쎄요.

A: 만일 그곳이 어떤 외계 문명이 있는 행성이라면 너는 그 곳에서 지구에서 온 구경거리가 될테지. 우리가 UFO의 외계인을 궁금해 하는 것처럼 어쩌면 실험실로 바로 갈 수도 있어. 그런 대우는 별로 바라는 바가 아닐테지? 만일 그들이 정말 마음 착한 외계인들이라 집도 주고 온갖 편의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너는 이내 그 생활이 지루하다 여길수도 있어. 지구를 떠났던 이유인 그 지루함이 다시 찾아오는 거지.

B: 외계문명이 없는 환경일수도 있잖아요.  

A: 그러면 더 문제야. 지구와 비슷한 행성인데 문명이 없는 곳에 내렸다고 상상해보자. 넌 그곳에서 너의 일상생활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겠지. 영화 '마션' 봤지. 왜, 화성에서 혼자 생존하기 위한 모습을 그린 영화잖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먹고, 입고, 잠자리를 위해 혼자서 뚝딱거리며 '나는 자연인이다'의 누군가처럼 생활을 위한 활동을 해야겠지. 나는 지금 최소한 자네의 몸을 건사하기 위한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거야. 어때, 내 말이 틀리니?

B: 그렇긴 하네요.

A: 그럴바에야 이미 익숙한 지구에서 좀 조용한 시골이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을 찾아 그곳에서 살아보는 게 낫지 굳이 지구를 떠날 이유는 없다는 거지.

B: 듣고 보니 그렇군요.

A: 지구를 떠나고 말고는 너의 선택이지만 떠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이유는 네 마음이 문제의 회피를 선택한 때문이지. 그냥 이곳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 다양한 인간사와 여러 군상들을 보는 게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도 있어. 그래봤자 너도 100년 살기 힘들잖아. 산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야. 네가 사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그걸 수용하는 방식은 오직 너의 선택에 달려있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이 있다‘ 는 말.

B: 떠나도 별반 다를 게 없다면야 이곳에 사는 게 낫겠네요.

A: 아무래도 좋아. 나는 도피의 목적으로 이곳이 싫어 저곳으로 간다면 별반 다르지는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럴바엔 익숙한 이곳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겠어? 인간에게 괴로움과 권태는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봇짐인 거지.

B: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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