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에 관한 고찰
저는 극단적이었어요.
절식 아니면 폭식이었죠.
그러다 폭식증이 왔어요.
정말 심한 정도였죠.
내가 나를 못 믿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니,
끝도 없이 바닥으로 빠지는 거예요.
하루 종일 무기력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뿐이었어요.
먹는 것과 자는 것.
이 외에는 관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유명 가수 아이유(이지은) 씨가 밝힌 자신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신의 필요나 욕구를 무언가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직장동료나 상사, 친구나 연인, 취업과 같은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들은 다른 방법으로 욕구를 분출한다. 자거나, 먹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방법을 취한다.
이런 선택들은 나쁘다고 할 수 없는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마치 무거운 아령을 들어야 하는데 부족한 근력을 다른 신체의 부위에서 끌어다 쓰는 것과 같은 원리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볼 수도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저 악순환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폭식증.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부터 시작되는 것. 충족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목마름과 그 마음의 공허를 음식 따위로 어떻게든 채워 넣으려는 행동. 더 망가져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스스로조차 인지하고 싶지 않아 먹지 않을 때는 다른 것에 집중하거나 잠을 자는 것으로 대체하는 행동. 누군가가 아닌 나의 이야기.
그렇다. 유학시절 나의 이야기이다. 내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 함께할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개인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 사람은 함께 살아갈 누군가가 필요하다. 단순히 감정과 생각을 나누기 위함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는 니체의 말도 이런 의미인 것이다. 스스로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나의 그 시절엔 가장 그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정말 학업을 위한 시간을 제외하곤 먹고, 유튜브를 보거나 잠을 자며 다른 것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내 스스로의 모습에서 눈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이런 행동들은 내가 표현하기를 ‘물에 빠지는 것’과 같은데, 처음엔 아주 편하게 느껴지지만 제때 벗어나지 않으면 결국은 점점 더 물에 깊이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 나오기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 된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족도 친구도 함께하지 않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더욱 힘들고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위산이 역류할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밀어 넣고, 당장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스턴트식의 욕구들을 취하며, 점점 더 망가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타인과 더 멀어지던 나. 그때의 나는 거울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망가진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학교 교수님이나 마트의 계산원을 빼고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혹여나 그곳에서도 아는 사람들을 만날까 두려워하며 지냈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행동에 대해 연구된 자료들이 있는데, 사실 그것이 가진 중독성 자체가 ‘중독’이라는 행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건강하게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타인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단연 폭식증 뿐만이 아니라, 술이나 포르노, 마약, 게임 등 어떤 것이라도 의존하거나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찾고 있다면, 우리는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대하는 자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방어적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높고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주변에서 쉽게 취할 수 있는 인스턴트 욕구들은 늘어나고 건강한 선택들을 하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방법들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다른 무언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나의 삶에서 나타났던 부정적인 결과들은 대부분 내가 건강하지 못할 때 찾아왔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몸무게 나가지도 않고, 무차별적인 습관적 폭식은 사라졌지만, 내 몸이 기억하는 익숙한 방법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무언갈 밀어 넣고 있는 내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내가 평생 경계해야 할 적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나를 강하게 쳤던 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었다. 인간은 정말로 필요한, 그리고 우리가 깊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 쉽게 편한 것들을 택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합리화하거나 그 선택이 좋은 것이었다고 믿어버리거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본인들이 마주한 문제의 해답을 알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타인의 자문을 구할 때는 ‘답정너’일 확률이 높다. 가끔씩 스님들께서 공연이나 프로그램에 나와 사람들의 고민들 들어주시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두 가지 대답은 ‘사는 것은 원래 그렇다’와 ‘그것은 스스로의 욕심이다’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 부자연스러운 일들이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은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욕구를 버릴 수는 없기에,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러니 오늘 저녁으로 고민을 하는 다이어터가 있다면,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것이 ‘행복한 한 끼’인지 다이어트를 통한 자신감인지 확실히 하는 것이 어떨까?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끝없는 고통 속에서 원하지 않는 것들만 잔뜩 채워 넣어 버리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