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5화
[대문 사진] 노르망디 고속도로 상에 세워진 조형물인 <바이킹들의 흔적을 찾아서>
바이킹들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우두머리 흐롤프(Hrólfr ; 프랑스 어로 롤롱)는 911년 생 클레흐 쉬흐 엪트 조약에 힘입어 루앙을 점거함과 동시에 세느 강을 통해 파리로 향하는 것을 금지한 조약에 따라 세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자 브르타뉴로 시선을 돌립니다.
브르타뉴의 일부 지방을 ‘노르망디인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고자 한 의도였습니다. 알랭 바흐브토흐트에 따르면, 이들은 이미 939년에 이 지역을 노르망디에 종속시켰습니다.
그러나 954년 영국을 손아귀에 거머쥔 베쎅스는 국왕의 자리에 올라 단로우(Danelaw)라는 스칸디나비아 군사조직을 설립하면서 980년부터 바이킹들의 활동을 재개했으며, 이어지는 100년 동안 바이킹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죠.
중세 노르망디 지역에서 제작된 문헌들에 따르면, 노르망디에서 세를 확장한 바이킹들은 단지 일화로 구전되는 차원을 넘어선 세력들이 아니라, 이미 스칸디나비아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였음을 입증해 줍니다.
11세기 바이킹들과 함께 살았던 동시대인들은 그들의 눈으로 이들이 어떠했으며, 그들과 어떠한 조약들을 체결했는지를 생생히 증거 해주고 있는 것이죠.
한편으로 새로운 공국으로 탄생한 노르망디는 아직 유효하게 남아있던 프랑크 왕국에 대한 야욕을 점차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 바이킹들이 사용하던 검으로 놋쇠에 황금을 입힌 칼 손잡이가 돋보입니다. © 꼬드벡 앙꼬 템플기사단 기념관. 야니크 드슬랑드 사진.
[2] 노르망디 고속도로 상에 세워진 조르쥬 솔테르가 제작한 조형물 「바이킹들의 흔적을 찾아서」, 1990. 크리크뵈프 다리에서 OREP 촬영. 사진 하단에 자리한 지도를 통하여 프랑스 북서부를 침공한 바이킹들의 루트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