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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식민지 정착민

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3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바이킹들이 처음 정착한 지역으로 알려진 노르망디 코탕탱 지역의 아름다운 바흔느빌 꺄흐트레 포구.


만일 스칸디나비아 정착촌을 한정하여 계산하는 것이 지난한 일이라 한다면, 이와 관련하여 정착민의 숫자를 세는 것 또한 명확히 말해서 가당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민을 굳이 계산한다면 모두 합하여 수천에 달할까요?


20세기 초에 훼르디낭 로트는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들의 수를 3천에서 4천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이 숫자는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5세기 때 이루어진 프랑크(갈리아) ‘정복’에 동원된 갈로 로만 계통의 군대가 겨우 물 한 모금에 불과한 극소수였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여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시험적이나마 평가를 내렸다는 기록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바이킹들은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여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자들은 군사 원정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식민지에 정착할 때 함께 동행했죠.


이는 바이킹들이 그들의 언어를 잃지 않게 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바이킹들은 매번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지역에서 부인을 데려오거나 아니면 동거녀를 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아직도 노르망디 지방에 남아있는 스칸디나비아 어에서 비롯한 여성 인명들을 단 지명들이 눈에 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는 로마 제국 시절에 활용된 형태를 본떠서 새롭게 창안해 낸 지명들입니다. 그 하나가 르 므닐 토브(Le Mesnil-Tôve ; Tófa에서 온 말)라 한다면, 다른 하나는 라 애 고노르(La Haie-Gonnor ; Gunnvör에서 온 말)입니다.


그렇다면 노르망디에 자리 잡은 바이킹들은 대체 어디서 온 자들일까요? 그들이 취한 이름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명들에 표기된 철자들을 옛 문헌들과 대조하면서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첫째가 이들 가운데 3분의 1은 특별하게도 덴마크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이들 중 3분의 2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공통으로 하고 있었죠. 후자는 노르망디로의 식민화가 진행되면서 후에 덴마크 어와 노르웨이 어 간의 음성 체계가 분열하는 과정을 겪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원래의 분명한 형태를 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인명과 지명을 대조해 보건대, 이 가운데 몇몇 이름들은 덴마크 인들의 이름과 같습니다. 아끄빌(Acqueville ; 라 아그와 캉 지역에 국한해서 살핀 결과임) 마을 이름에서 확인되는 아기(Aghi)와 아키(Aki)가 이 경우에 속합니다.


여러 곳의 마을에서 확인되는 아프빌(Appeville ; 코 지방과 코탕탱 지역에 위치한) 마을 이름 또한 아피(Api)에서 비롯되었죠. 여러 곳에 산재한 바흔느빌(Barneville)이나 반느빌(Banneville) 마을(코탕탱 지역에서 루앙 지역에 이르기까지 분포해 있는)의 바흐니(Barni)도 이 경우에 속합니다.


브라므토(Brametot) 마을의 브라미(Brami)나, 곤느토(Gonnetot)와 곤느빌(Gonneville) 마을(이 두 마을은 모두 코 지역에 위치한 마을들이다)에서의 구니(Gunni) 역시 덴마크 어로 된 인명입니다.


이 밖에도 르 나브토(Le Navetot ; 옛 철자 상으로는 ‘오브토(Hovetot)’라 표기, 캉 지역에 속한 마을)에서의 호피(Hofi), 카틀롱(Catelon)과 여러 마을 이름으로 사용된 카뜨빌(Catteville) 또는 카트빌(Cateville) 마을(코 지역과 코탕탱 지역)에서의 카티(Kati), 또한 모뜨빌(Motteville)과 모트빌(Mautheville)에서의 말티(Malti), 에타유빌(Étalleville ; 옛 철자상으로는 ‘스탈라빌라(Stalavilla)’라 표기, 코 지방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사쓰토(Sassetot), 소쓰투흐(Saussetour) 그리고 사쓰빌(Sasseville) 마을(코와 코탕탱 지역에 속한 마을)의 삭시(Saxi), 여러 곳에 산재한 토크빌(Tocqueville ; 코와 코탕탱 지역에 속한 마을들)의 토키(Tóki)가 또한 이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이름들도 마찬가지로 식민지로의 정착을 시도한 이들의 국적을 명확히 밝혀주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면 코 지역에 정착한 이들 대부분이 오직 덴마크 인들이었다는 사실도 이런 요인으로 말미암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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