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45화
[대문 사진] 훼깡의 성삼위일체 천주교회
훼깡(Fécamp)의 삼위일체 수도원 교회(Église de la Trinité)는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 머무는 궁전과 잇닿은 성벽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교회를 리샤르 2세가 1001년 고딕 양식으로 재건한 성당이 바로 고귀한 성혈을 보관하고 있는 훼깡의 성지이자 문화유산인 삼위일체 성당이다.
노르망디 공국을 부흥시킨 리샤르 2세는 부왕 리샤르 1세와 함께 훼깡의 삼위일체 성당에 묻혔다. 그들의 역사마저 전설이 된 성삼위일체 성당은 노르망디 공작의 묘지이자 보배로운 성혈이 보관되어 있는 순례자들의 성지인 동시에 훼깡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긴 검을 찬 기욤(기욤 롱그 에페)과 두려움을 모르는 리샤르 1세의 조각상이 자리한 성당 입구는 건축 양식 면에서 여느 성당과 다르지 않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성당이지만 성당 입구 문턱 너머로 발을 딛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과 감동이 서로 교차하는 휘둥그레진 두 눈에 비친 성당 내부는 저 고딕 성당마저 뛰어넘는 제단을 향한 거대한 천장과 늘어선 기둥들 그리고 신랑이라 부르는 회중석 통로로 이어진다.
성당 문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나 역시 그런 감동에 휘말린다. 성당이 늘 그렇겠거니 생각한 변명조차 옹색해지는 중앙 회중석 회랑 초입에서부터 종교 건축물에 대해 좀 안다는 유식함조차 초라해지고 만다. 마치 바이외(Bayeux) 대성당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종교가 서로 다른 이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을 정도로 장대함과 더불어 고귀한 영성이 부활하는 순간이다.
성총의 시인 폴 클로델이 훼깡 삼위일체 성당을 방문했더라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받은 충격보다 먼저 중앙 회중석의 기둥을 부여잡고 흐느꼈을 법하다. 이 유태인이 기둥을 부여잡고 흘린 눈물은 결국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불러왔다.
3단에 걸쳐 지은 성당 양쪽 벽면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겨울인데도 실내를 환하게 비추고 그것도 부족한 듯 제단과 회랑이 교차하는 지점에 설치된 채광탑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제단을 한없이 비추는 듯하다. 이 또한 루앙 대성당에서 발견하는 노르망디 인들이 발명한 그들만의 건축술인 셈이다.
9세기 바이킹들이 파괴한 성당을 후손인 리샤르 2세가 마치 죗값을 치르듯 아름다운 성당으로 개축한 것이다. 리샤르 2세가 성당 개축 공사를 위해 불러들인 이탈리아 태생의 개혁가이자 클뤼니 수도사였던 기욤 드 볼피아노는 노르망디 공작이 생각한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이 엄청난 공사를 진두지휘했을 것이다. 그가 완성한 훼깡 삼위일체 성당은 프랑스 왕국에 비견되는 노르망디 공국의 영성의 축을 형성했음 직하다.
치열한 개혁 정신을 구비한 기욤 드 볼피아노 덕분에 훼깡은 프랑스 왕국이 자랑하는 클뤼니 수도원에 필적하는 노르망디 수도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덕분에 기독교 문명의 예술적 르네상스 또한 활짝 꽃피울 수 있었다.
성당 입구 문턱을 넘어서자 제단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천장으로 쭉 뻗어 올라간 기둥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무한하고도 다양한 상징들이 새겨진 기둥머리 장식들을 일일이 따져 물을 틈조차 없다. 보배로운 성혈이 보관된 성물함 앞에서조차 기둥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란에 시달린다. 드디어 부왕 리샤르 1세와 함께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리샤르 2세의 무덤에 이르자 입구 쪽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연주해 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가슴팍에 성호를 그으며 나는 내가 아직도 가톨릭 신자로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교회 건물에 무너진 냉담자의 치기나 만용은 찾아볼 길이 없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어렵사리 우리를 찾아 돌아온 듯이 가슴 한구석에서 환희의 벅찬 맥박마저 출렁인다.
그래! 돌아온 탕자이기도 하리라. 저 영성의 시대였다면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위에 온 사지를 나무 기둥에 매달고 처참히 죽어가는 버림받은 영혼이었으리라. 무신론자의 허무맹랑한 설교에 귀 기울이다 느닷없이 월세방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귀를 자르고 자른 귀를 붕대로 싸맨 채 그림을 그리던, 그 마르지 않은 물감투성이의 캔버스를 들고 기차역 카페로 달려간 네덜란드 화가처럼 영성의 말갛고 투명한 정신을 지닌 동지를 찾아 나섰으리라.
내가 걸어가는 회랑은 그처럼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제단들이 자리 잡은 기다란 순환형 회랑을 걸어갈 때마다 발목에 차이는 수형인의 쇠 수갑처럼 철거덕 철거덕 공명하는 울림만이 텅 빈 대성당의 허공에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