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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Apr 13. 2024

노르망디의 작은 베니스

몽생미셸 가는 길 174화

[대문 사진] 퐁토드메흐의 대리석 타일 광장


여행을 하다 보면 프랑스 시골 마을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빗대어 자랑하는 관광 홍보용 문구와 자주 마주친다. 프랑스 인들이 은근히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를 부러워하는 시샘일 것이다.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해상왕국 베네치아는 바다 한가운데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운하가 길을 대신하는 도시, 그 바닷길을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오간다. 이런 멋진 풍경을 노르망디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꿈꾼다는 건 오산이다. 곤돌라는 고사하고 좁은 실개천 같은 운하를 오가는 배 한 척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카누를 타고 좁은 운하를 오가는 청춘들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이 마을을 베네치아와 비교하기는 그렇고 베네치아를 베니스라 부르는 프랑스 인들의 심정에 기대어 퐁토드메흐(Pont-Audemer) 운하를 바라본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운하는 그 고즈넉함을 몽실몽실 간직한 채다. 나는 그 아침을 그려보고자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스케치는 그만 물안개가 사라진 환한 정오에 가까웠다.


퐁포드메흐 운하길을 화첩에 담다.


운하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 인물이 떠오른다. 에르메스(Hermès) 창업주인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 퐁토드메흐는 원래 무두장이의 도시였다. 무두장이들은 퐁토드메흐를 가로지르는 운하에서 가죽을 세척하고 무두질했다. 고대 로마 시대 이래로 처음에는 듀오 폰테스(Duos Pontes)로, 그다음에는 폰스 오도마리스(Pons Audomaris)로 불렸던 이 도시는 리지외와 릴본느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일찍부터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무역의 주요한 교차로였다.


퐁토드메흐는 항상 가죽의 품질로 유명했으며, 천 년 전 정복왕 기욤(윌리엄)의 기마병 장비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제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가죽을 씻기 위한 운하들이 도심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나 있는 이 도시만의 특징에서 기인할 것이다.


18세기에 영국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퐁토드메흐에 정착하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그들은 중세 이래로 도시의 특산품인 가죽 무두질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사실, 파리에 본사를 둔 에르메스의 창립자인 티에리 에르메스가 1821년 프로이센에서 안장 장인으로 일하기 위해 이주해 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렇듯이 에르메스 최고 경영자는 다름 아닌 말안장을 만드는 무두장이였던 셈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를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발전시킨 것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이지만 말이다.


에르메스 창업주 티에리 에르메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포 데탱 광장(Place Pot d’Etain)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그마한 광장엔 대리석으로 만든 타일들이 길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먼지 묻은 신발을 신고 걸어가기가 황송했던 그 타일 깐 길이 자꾸만 연상된 탓에 광장 길을 한 번 걸어가 보고 싶었다.


기하학적 무늬가 아름다운 포 데탱 광장(Place Pot d’Etain)의 돌을 잘라 만든 타일로 장식한 길.



이 길을 공중에서 한 번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 절실했다. 하지만 우리네처럼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옥상이 없는 반 목조 주택만의 특성상 공중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일만큼은 불가능에 가깝다. 차 한 잔을 마시기가 무섭게 아쉽게도 광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심정은 착잡했다. 발길은 또 어느 거리인가를 배회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인근의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향한다.


생 제르맹(Saint-Germain) 마을의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어진 성당은 노르망디 역사적 기념물에 등재되었다. 노르망디에서 탁월한 로마네스크 양식에 입각한 교회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이 성당은 천 년 전 정복왕 기욤 시대로부터 이루어진 수도원 건축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위풍당당하고 냉정한 교회는 1035년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후원을 받았던 이웃한 생 피에르 드 프레오(Saint-Pierre de Préaux) 수도원의 베네딕토 수도회 덕분에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생 제르맹(Saint-Germain) 마을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기초한 성당. 십자가 형태의 내부 한 복판에 천장을 뚫고 올라선 채광탑은 노르망디 인들만의 건축술이 빚은 결정체다.


본당의 로마네스크 양식적 요소는 복원 기간 동안 건물이 축소되었을 때 서쪽 외관에서 재사용되었으며, 1900년대에 교회가 리모델링되었을 때 퐁토드메흐(Pont-Audemer)의 사라진 노트르담 뒤 프레(Notre-Dame-du-Pré) 교회 문에서 운반해 온 둥근 활대 모양의 아치가 기존 건물에 통합되었다.


성당 서쪽 파사드 정문은 퐁토드메흐에서 가져온 둥근 활대 모양의 이중 포털로 구성되었다.


정사각형 타워를 지탱하는 광대한 트란셒트(transept), 엄격한 측면 통로(측랑)와 아주 단순한 아케이드가 나 있는 중앙 회중석(신랑)은 11세기의 마지막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동쪽 부분의 건축 양식도 11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부의 단순함을 반영하는 외관의 단순함은 동물의 머리, 마스크 또는 인물을 나타내는 조각으로 장식된 처마 장식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부드러움에 기초하고 있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 목적지는 인근의 마을 퐁레베크(Pont-l'Évêque)로 정했다. 다시 바닷가로 향한 길이다. 그 도상에 있는 마을을 오랜만에 탐색하는 일도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은 봄기운을 부추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필 즈음이면 칼바도스 지방의 여기저기 과수밭들 모두가 꽃 물든 모습일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사과꽃, 배꽃 핀 들판에서 맞는 봄은 그래서 한결 마음마저 들뜨게 만든다.

퐁토드메흐의 과수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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