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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Apr 15. 2024

과수밭으로 난 길

몽생미셸로 가는 길 175화


퐁토드메흐(Pont-Audemer)를 출발하여 퐁레베크(Pont-l'Évêque)로 향한 길은 과수밭을 에둘러 가는 길이다. 봄날에 고속도로를 외면한 채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기분은 마치 날아갈 듯한 상쾌한 기분이다. 모처럼 초록빛 들판의 시원한 공기를 흡입한 덕에 밤새 휘둘리던 잔기침마저 잦아지고 충혈된 눈도 한층 맑아진 것 같다.


야트막한 구릉길을 달리다 보니 언뜻언뜻 나타나는 농가들이 반갑게 다가오고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목초지에서 봄꽃을 틔우는 과수나무 꽃들은 흐드러진 분위기마저 띄운다. 비로소 전형적인 오쥬 지방(Pay d’Auge)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다.


봄철이면 과수밭마다 봄꽃이 한창이다. 산뜻한 농가와 어울리는 과수밭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칼바도스(Calvados) 지방엔 과수밭이 많다. 위도상으로 포도나무 재배 임계점을 넘어선 탓에 과수원마다 포도나무 대신 사과나무, 배나무들을 키운다.


열매를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과실들은 발효주나 증류주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사과를 발효하여 만든 애플와인을 시드르(Cidre)라 하고, 증류하여 만든 독주(Eau de vie)를 이들은 칼바도스(Calvados)라 한다.


시드르는 알코올 농도가 3도가량이지만, 칼바도스는 40도에 육박한다. 시드르는 식사 때마다 반주로 삼는 술이어서 한 병 너끈히 마실 수 있지만, 증류주인 칼바도스는 꼬냑이나 위스키처럼 40도이기에 ‘소화제’ 삼아 입만 축이는 탓에 두 모금 이상 마시는 법이 없다.


가게 진열장을 채운 칼바도스 지방에서 주조된 시드르(Cidre)와 칼바도스(Calvados).


봄철이면 이들 과수밭에서 내뿜는 봄꽃이 절경이다. 시외버스를 타고 경기도 공도에서 안성을 향할 때 버스 유리창문으로 봤던 봄꽃 흐드러지게 핀 풍경은 혼곤한 봄기운에 온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그 혼곤함 속에 바라보던 과수밭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차던지 옛 기억을 반추해 보는 이유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속내에 있다.


겨울이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흙길을 걸으며 과수밭의 봄꽃에 다시 일어설 희망을 읽던 청춘, 그러나 그 청춘은 온 간데없고 매번 힘겹게 찾아온 계절을 쉽게 떠나보내는 이별만 되풀이된다. 그걸 인생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핍진한 삶의 되풀이라 해야 하나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봄꽃이 필 때면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유일한 친구 고갱이 아흘르를 떠날 작심을 하자 하숙집으로 돌아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잘린 귀를 붕대로 싸맨 채 거울 앞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다.


물감조차 마르지 않은 유화 캔버스를 들고 친구가 앉아있는 기차역 앞 카페로 달려가는 빈센트,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어 금치산자로 낙인찍혀서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화가, 화가는 아흘르(Arles) 정신병원에서 생폴 드 모졸레 수도원(Le Monastère de Saint-Paul de Mausolé) 정신병동으로 강제 이송되어 1년여를 수감생활을 한다.


수도원 일부를 개조하여 만든 병실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흥분 상태가 가라앉자 수도원장이 별안간 고흐에게 직업을 묻는다. 그가 대답한다. “화가!”


화가는 고흐의 유일한 직업이었다. 수도원장의 허락 하에 수도원 경내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가는 이곳에서 수많은 과수밭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 가운데 한 점이 사랑하는 동생 테오의 아들 돌잔치에 선물하려고 그린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다.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 1890,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어느 겨울날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 그림을 떠올리며 고흐가 그린 현장을 기어코 찾아가 보겠노라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남불 프로방스의 생폴 드 모졸레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봄철 과수들이 꽃망울을 틔울 때마다 선명히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고흐는 햇빛 한 점 들어올 것 같지 않은 감옥 같은 병실에서 매일 찬란하고도 눈부신 색조를 창조해 냈다. 이 대명천지 밝은 봄날에 흐릿한 풍경만을 떠올리는 한 존재와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정신병동으로  쓰인 생폴 드 모졸레 수도원(Le Monastère de Saint-Paul de Mausolé) 모습.
생폴 드 모졸레 수도원 정신병동 빈센트 반 고흐의 병실.


지옥 같은 봄날에 아몬드 꽃 피는 희망을 화폭에 담았던 그의 낡은 환자복 호주머니엔 동전 한 닢 없었다. 그림 외에는 달리 선물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화가는 꽃을 피운 아몬드 나무를 그려 그걸 동생 테오의 아들 돌잔치 선물로 보낸 것이다.


그의 삶은 죄수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모든 정신적 공황상태나 삶의 불안, 고통마저 잊은 채 천상의 색조를 찾아 헤매면서 화구와 이젤 그리고 캔버스를 옆구리에 끼고는 과수밭을 헤매며 새로운 ‘꽃 피는 풍경’을 찾아 나서곤 했던 것이다.


자동차 앞유리창에 떨어지는 실낱 같은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이제서야 나는 결론짓는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의 그림은 “색조 이상의 의미를 띤 것”이라고.



사족(蛇足)이긴 하나, 고흐가 조카의 돌잔치 선물로 그린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은 테오 내외가 소장하다가 고흐가 죽은 뒤 1년 있다가 테오마저 사망하자 프랑스 태생의 테오 부인이 시가인 네덜란드로 이주해 간 뒤 아들과 함께 살면서 그림을 소장해 오다가 아들한테 물려주었는데, 어머니로부터 삼촌의 그림을 물려받은 빈센트 윌리엄 반 고흐는 살아생전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 건립을 위한 재단에 기증하였다.


테오는 형 빈센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자신의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장가도 못간 형의 이름, 고흐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이름인 빈센트를 넣어 빈센트 윌리엄 반 고흐라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이 두 형제는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로부터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오베르 쉬흐 우아즈 공동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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