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1화
파리는 봄빛
수은주 내려갔지만
봄은 어느새 오르막길
오르락내리락 날씨 요동쳐도
빗방울은 싸늘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
새벽부터
분주한 기차역
파리 베르시(Bercy)
플랫폼에 대기 중인
부르고뉴(Bourgogne) 행 열차
이리저리 짐짝처럼 흔들리며
봄꽃 만개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갈 꿈에 부풀어있는데.
상스(Sens)를 지나자
차창 밖 세상이 환하다.
끝없이 펼쳐진
봄 들판에
핀
유채꽃
얼마 만에 다시 겪는
봄인지
모르겠다.
비로소
설레는 맘
꽉 찬 충만함
비워져야 만이
다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에
봄 들판에서
한 수고로운 영혼이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걸
지켜본다.
기차는
봄 푸른 구릉길을 달려
디종(Dijon)에 닿고
간이역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열차
어느 겨울날
빗속을 헤매던
거리를 떠올린다.
아무도 마중 나온 이 없고
아무도 배웅해 준 이 없던
도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출발 신호음에
다시 숨이 차는
열차
디종(Dijon)은
부르고뉴의 시작이고
리용(Lyon)은
부르고뉴의 끝이다.
나 내릴 곳은
어디?
쥬브레 샹베르탱
포도밭을 지나면
본느(Beaune)
포도밭에 이르면
그때는 보일까?
청춘의
덧없는 꿈들만
바람에 서걱이고
꼬뜨 도르(Côte d’Or)
허공을 향해 난
포도밭 길마다
알알이 영글던
포도알들이?
본느(Beaune)에서
기차를 탄
알제리 태생 노인네
브라질 아가씨에게
길을 묻고
샤니(Chagny)에서
기차에 오른
네 명의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주말을 보낸
표정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사이
기차가 숨을 고르는
마콩(Mâcon)
봄날의
하룻밤이
유일하게 마중 나온
사온느(Sâone) 강변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