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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연습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8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목숨을 잃은 사내(L'homme mort)」, 1864-1865.



18장-2
(1882-1883)



전염병을 피해 시골로 거처를 옮기자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질 일이 없을 성싶기도 했다. 미술전람회에 처음 작품을 출품한 이래로 전혀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전혀 그럴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이제는 서로 드잡이 하듯 경쟁하는 혼란한 전시회가 영 달갑지 않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 관련한 모든 것들마저 짜증 나게 만들었다.


모든 게 귀찮아졌다. 기력도 쇠잔해진 탓에 올 전시회에 뭘 어떻게 무슨 작품을 준비할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마네 자신은 콩쿠르의 열외 대상(HC)이기까지 했다. 부아가 치미는 일이었다. 울적한 심정이었을 뿐 아니라 마치 조롱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네는 가족과 함께 소일하면서 한쪽에 미뤄뒀던 작품들을 만지작거렸다. 무릎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은 수잔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무슨 이유로 인물화를 그려주지 않느냐고 노발대발 덤벼드는 포레의 초상화를 새롭게 그려보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포레의 인물화(1882-1883)」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Femme au chat)」(1882-1883). [1]


포레는 마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가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대체 어떤 초상화를 꿈꾸는지는 하느님만이 알 일이었다. 마네 또한 대체 포레가 왜 그렇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못마땅해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포레가 못마땅해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였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마네는 이제 더는 누굴 좋아하는 일이 없었다. 그럴 기력마저 없었던 탓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을 파스텔로 그리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성미가 고약하고 건방진 이 바리톤 가수가 너무 까다롭게 요구했기 때문에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닐까?


마네는 그런 포레가 그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포레 또한 마네가 그러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마네의 그림을 4점이나 구입했다. 포레는 「온실에서」와 「휘이유 저택을 올려다본 풍경」 그리고 「로슈포흐의 초상화들」 가운데 한 점과 「배를 깎고 있는 레옹」을 기꺼이 구입하고 나섰다.


장 밥티스트 포레(Jean-Baptiste Faure)가 마네에게서 구입한 그림 4점. [2]


책을 읽을 만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탓에 눈 뜨고 있는 시간가운데 4분의 3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지만 자주 눈이 감겼다. “죽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마네의 고백은 뜻밖에 찾아올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깜짝 놀라게 될 이들에게 미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를 주고자 함이었을까? 마네는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난데없이 플로베르의 소설에 심취하게 된 이유에서였다.


2년 전에 세상을 뜬 이 소설가야말로 화를 아주 잘 내는 참으로 특이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말라르메가 마네에게 플로베르의 소설을 한 번 읽어보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권한 이유도 한몫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리의 통증을 잊을 만큼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11월 초 마네는 휘이유(Rueil-Malmaison)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다시 돌아갔다. 겨울이 시작된 탓에 두려워 떨기만 했다. 늘 따사로운 햇빛과 열기를 간절히 바랐던 탓에 봄이 올 때까지는 추위를 참고 견디는 도리밖에 없었다. 왜냐면 1883년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관계로 1884년만큼은 착실히 미술전람회 준비에 임해야 할 터였다.


어느 날 저녁 나다르는 마네가 참으로 경이적일 만큼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고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걸 듣게 되었다. 마네는 아직 초벌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마네가 그리 하였다는 건 하느님도 알고 계시는 일이라고 나다르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1883년 2월 리용에서 개최된 현대미술대전에 마네의 그림 한 점이 전시되었다! 현장을 찾아 자신의 그림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어떤지를 직접 살펴볼 수 없었던 마네는 궁금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 받았다. 「카페 공연장」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전갈이었다.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긴 했으나, 좋아서 펄쩍 뛸 만큼 흥에 겨워할 처지가 못 되었다. 때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탓이었다. 이젠 어느 것에도 흥겨워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1883년 2월 리용 미술대전에 전시된 마네의 「카페 공연장(Le Café–Concert)」(1879) 그림.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을 시에는, 또한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을 적에는 레옹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아틀리에에 들를 수 있었다. 아틀리에에서 마네는 이따금씩 스케치를 하곤 했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적에는 바깥출입을 삼간 채, 벽난로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을 소일했다. 그런 그에게 레옹과 수잔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주전부리할 것을 갖다 주었다.


의사 시르데는 마네의 건강상태를 불안해하면서도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방법 이외에는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냉혹하게도 마네의 병은 깊어만 갔고, 고통 또한 점점 심해져만 갔다. 언론은 마네의 건강이 위중하다는 주치의가 발표한 중요 인물에 대한 용태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기사화했다. 그 덕분에 모두가 마네의 건강을 의심하던 것이 이젠 기정사실화 되어버리고 말았다. 언론 기사야말로 이젠 완전히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기울어져만 갔다.


반쯤 감긴 눈으로 마네는 레옹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가족 간의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희생된 자식이었다. 마네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씹으며 변명할 말을 찾았다. 자신을 변호해 줄 만한 것이 무엇 일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자신이 벌인 짓을 적절히 해명해 줄 수는 없었다. 죄책감은 오히려 마네로 하여금 레옹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마저 방해하고 나섰다.


스캔들을 일으킬까 봐 두려웠던 탓에 자신의 친자식이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어떡하든 숨겨온 사실을 이제 와서 어떻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마네는 오히려 사실을 숨기고 과장하고 부자관계마저 부정해 왔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자신이 소심했던 탓에 자식을 희생물로 삼았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시인할 생각마저 하기까지 한 것이다. 마네는 레옹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비로서의 진정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네는 그런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더군다나 유언장에 자신의 속죄에 관한 어떠한 내용도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레옹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자신을 병간호하고 있지를 않은가! 레옹을 귀애하는 것이야말로 양심의 가책에 따른 당연하고도 올바른 행동이지 않은가?


마네는 좀 더 편안한 상태로 있게 해 주기 위해서 앉음새를 고쳐주고 있는 레옹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마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모두가 그가 몸이 아파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가보다 생각했다. 자신의 친자식임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마네는 이제 나이가 서른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것이다. 자식은 두 팔로 병든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귀에다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대부! 대부! 이젠 봄이 오려나 봐요. 봄이 오면 몸도 나아질 거예요.”


친구들을,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할 수 없음을 마네는 절감했다. 마네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더하여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베르트는 그런 마네를 이해했다. 수잔은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요행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레옹은 단박에 마네에게 닥쳐올 죽음마저 부정하고 나섰다. 모친인 으제니는 다른 두 형제를 향하여 어떡하든 마네를 살려내라고 채근대기만 했다.






[1] 고양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마네 부인인 수잔 린호프(Suzanne Leenhoff)(오른쪽 그림, 1882-1883)과 또다시 그린 오페라 바리톤 가수이자 인상파 작품 개인 소장가이기도 한 장 밥티스트 포레(Jean-Baptiste Faure)의 인물화(왼쪽 그림, 1882-1883).


[2] 왼쪽부터 「온실에서(Dans la serre, 1879)」, 「로슈포흐의 초상화(Portrait de Rochefort, 1881)」, 「배를 깎고 있는 레옹(Léon avec une poire, 1868)」, 「휘이유 저택을 올려다본 풍경(Vue verticale de la maison de Rueil,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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