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91화
18장-4
(1882-1883)
3월 어느 날 엘리사가 선물을 들고 아틀리에에 나타났다. 과일에다가 꽃다발을 한 아름 사 들고 나타나서는 장난기 많은 여자처럼 마네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이젠 봄이에요.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더군다나 내일이 부활절이에요.”
부활절이라고 메리가 마네에게 아주 기가 막히도록 예쁜 달걀 모양의 초콜릿까지 선물한 것이다.
마네는 엘리사더러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해보라고 권했다. 그런 그녀를 마네는 화폭에 담았다. 잘 되어가던 차에 난데없이 머릿속이 번쩍거릴 만큼 격심한 통증이 일어나면서 그림 그리는 걸 중단하고야 말았다. 레옹이 도우러 올 때까지 기다릴 틈도 없어서 엘리사가 직접 나서서 마네를 몇 미터 떨어진 쉴 곳으로 옮겼다.
엘리사를 스케치하던 중에 중단된 그림은 여전히 이젤 위에 놓인 채, 주인 잃은 아틀리에를 지킬 참이었다. 마네는 그걸 바닥에 내려놓을 기력조차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레옹은 마네가 잠들 적마다 하반신이 침상에 부딪혀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몇 번이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자리에 눕혔다. 이제 마네는 볼이 움푹 꺼진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코는 벌겋게 부풀어 오른 상태에다가 그 잘생긴 얼굴마저 뒤틀려 죽기 직전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생명의 호흡마저 가느다랗게 엷어져만 가는 중이었다.
1883년 3월 25일 종양이 왼쪽 다리 전체에 퍼졌다.
레옹만이 오직 마네와 함께 방에 틀어박힐 수 있었다. 커다란 벽난로가 있는 거실은 벌써 마네가 임종을 맞이할 방으로 개조된 상태였다. 철 이르게 찾아온 봄 날씨에 따사로운 햇살이 방 안 가득했지만, 마네는 덜덜 떨면서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통에 시달리던 중에 마네는 누군가가 모친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아이를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아이들을 낳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마네를 두고 할 소리는 아니었다. 마네는 후회했다.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어렸을 적 브라질 여자애들하고 그 짓을 하면서부터 죽을병에 걸렸다는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의 못난 행동 때문이었다.
마네는 수잔은 물론 베르트나 레옹의 얼굴을 마주할 면목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고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갑자기 제정신이 들자 정신적 고통마저 몰아닥쳤다. 어머니가 베르트와 으젠의 집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적어도 자신이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만이라도…….
마네의 모친은 손주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길길이 날뛰었다. 지난여름에 한 차례 소동을 겪었던 에두아르는 베르트에게 그녀가 낳은 딸인 비비가 약간 감기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모친은 가족이 조금만 아파도 자신 스스로 어떻게 돌볼 수 없다는 망연함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모친이었지만, 자식들의 영원불사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특이나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장남에 대한 감정은 지나칠 정도였다. 이미 자신의 삶을 포기했을 만큼 낙담한 탓이었을까? 마네는 이제야말로 모친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마네는 병든 고양이처럼 몸을 바싹 웅크렸다. 그리고는 투덜대면서 통증으로 말미암아 몹시도 힘들어했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마저 반갑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친구들은 마네에게 희망을 주려고 애썼다. 만일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마네는 운명의 문안으로 들어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다르가 마네에게 최근에 펴낸 『진창 속을 헤매는 세상(Le Monde où l’on patauge)』이란 책자를 보여주자 표지 제목을 읽은 마네는 그에 걸맞은 말을 곧바로 쏟아냈다. “그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창 같은 세상이 맞긴 맞는 것 같네. 하나 내가 그런 세상을 사랑했다는 걸 하느님께서는 이해하시겠지.”
마네는 어느 누구보다도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이 일어나면서 자리에 꼼짝 못 하게 되자 건강이 이전보다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리 없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더 이상 아틀리에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마네는 침대 맡에서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세밀화 작업을 한 번 수업받아볼까 고민하기까지 했다. 마네는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은 편지를 세밀화 분야에 정통한 동료작가에게 보냈다.
“친애하는 드회이유! 내 당신께 한 두 차례 세밀화 수업을 받고자 하니 내게로 와주시면 고맙겠소. 내가 당신께 수업을 받는 대가로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파스텔화를 드리리다.”
살고자 발버둥 치는 희망은 그처럼 격렬하기만 했다.
한 번은 마네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균형을 잃고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매번 추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모로 누워있다가 불현듯 기억 속에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절망적인 생각마저 들면 그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질 수 있는 사고였다. 죽음과 싸워 이겨보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짓은 허망하기만 했다.
“유사 요법 치료를 한 번 받아보면 어떨까?” 으젠이 강력하게 제안하고 나섰다. 의사인 가셰 박사가 마네가 누워있는 머리맡으로 달려왔다. 가셰 박사는 그림에 대해 수다 떨기를 좋아할 뿐, 마네의 병을 낫게 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말 그대로 좀 안면이 있다 싶어 그를 불렀을 뿐이다. 약으로 치료하기에는 마네의 병이 너무 위중했다. 더는 어떻게 해보기에도 이미 시기가 너무 늦어버린 탓도 있었다.
레옹은 마네가 만나봐도 괜찮을 친구들 이름을 손꼽아보았다. 드가, 피사로, 팡탱, 르누아르, 모네, 프랭, 아스트뤼크, 말라르메……. 하지만 졸라는 아니었다. 너무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이 모든 걸 단념하게 만들었다. 베르트 역시 친구들에게 모두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모두는 알고 있었다. 마네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어떻게 마네를 그처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인가?
귀스타브는 어떡해서든지 죽기 전에 친구인 클레망소를 마네에게 데려올 심산이었다. 마네가 클레망소에게 초상화를 한 번 제작해보고 싶다 하자 클레망소는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서둘러서 그리면 15분이면 충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은 성사될 수 없었다. 클레망소는 마네의 머리맡에서 그를 지켜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게 끝났다. 어느 누구도 마네에게 관심을 쏟을 만큼 마네의 삶과 예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우정이나 상냥함조차도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쏟을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모네는 적어도 마네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으나, 클레망소는 그렇지가 못했다.
납빛으로 창백해진 얼굴에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는 하나 마네는 여전히 유화 한 점만이라도 구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마추어 소장가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온 생애에 걸쳐 마네를 비웃고 경멸하기 일쑤였던 이들조차도 살아생전에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탓이다. “앞으로 그림 값이 엄청나게 오를 뿐 아니라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죽음에 투기를 일삼은 이들!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모리배들. 모두 꺼져버려! 레옹은 그림 값이 치솟기를 당분간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모두가 마네의 그림을 찾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며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모든 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마네를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일들이었다. 고통뿐인 단말마와 공포의 연속이었다. 무능한 의사는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오직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기는 일에만 매달렸다.
환자가 내지르는 고통에 찬 단말마는 집안의 온 가구들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마네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수잔이 기르고 있는 자그마한 개인 폴레뜨 역시 마네 곁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죽을 듯이 짖어대면서 마네의 비명소리마저 뒤덮어버렸다.
종양으로 썩어 들어가는 다리는 점점 검게 변해갔다. 악취가 진동하면서 살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하루 온종일 방안을 뒤덮어갔다. 일요일 아침에서야 레옹은 의식을 잃은 마네를 발견하고는 의사인 시르데를 부르러 뛰어갔다. 시르데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는지 동료 외과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매일 아침 의사들이 왕진을 다녀간 뒤에 레옹은 건물 한쪽 커다란 홀에 모여든 군중들 앞에서 의사가 작성한 마네의 건강 상태에 관한 보고서를 낭독했다. 매일 마네가 살고 있는 건물 앞으로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물론이고 마네에 대해 호기심을 지닌 인물이거나 무슨 일이나 났나 들여다보고 싶어 찾아온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마네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모리배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결코 실패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주교가 마네의 종부 성사를 거행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레옹은 주교가 집안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위렐 신부가 종부 성사를 거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네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시르데에 의해 도와달라고 요청을 받은 의사들은 마네의 집을 찾아와서는 대기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거듭했다. 다리를 절단하는 것만이 오직 고통을 덜어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하여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시간을 지체할 이유도 없었다.
전혀 차도가 보이질 않고 있는 병의 위중함으로 볼 때, 고통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을 강구할 만한 게 없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마네의 처량한 모습은 마치 자신이 그린 길 포장공사 작업을 하고 있는 모니에 거리를 담은 풍경 속에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상이용사 출신의 노동자를 연상케 했다. 마네는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림 속의 등장인물과 같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