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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 편의 시

상처 난 잎 하나에도

by 오래된 타자기


오늘도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상처 난 잎을 바라봅니다.


어느 날 무심결에

시든 잎들을 정리하다

서툰 가위질에

잎 하나를 베었습니다.


살이 베인 상처에도

잎은 시들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뎌냈습니다.


매일 바라봐도

지지 않는 잎이

대견하다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뒤로도 꽤 오랜 날이 흘렀음에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잎이 대견하다 싶어

이리저리 조심스레 매만져 봅니다.


수맥이 잘린 잎 하나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생명 충만한 살아있음에 감사할 줄 모르는

죄인이 된 듯싶습니다.


오늘도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들어가는 생명을 바라봅니다.


해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음에

이젠 스스로 지쳐가는지

시들어만 가는 잎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것만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인 양


잎은 어느 때인가 시들어

저 스스로 바닥에

떨어져 누울 것을


다만 그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싶다고

길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그 단 한 마디

식물에게 말을 붙여봅니다.


상처 입은 잎 하나에도

생명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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