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자의 경험을 설계하는, 전시 디자인

Exhibition Design

by 브레첼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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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전시 관람이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시장소는 젊은 세대에게 만남과 데이트의 장소가 되었고, 관람 경험을 SNS로 공유하는 인증 문화 또한 보편화되었다. 과거에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을 가야만 접할 수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이제는 국내에서도 손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전시 풍경은 양적, 질적으로 크게 변화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는 형태의 전시 디자인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전시의 기원은 16세기 독일의 분더카머(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와 18~19세기 박물관 및 박람회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 분더카머는 자연물, 예술품, 희귀품을 한 공간에 모아두는 수집가의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전시라기보다는 수집가의 취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나열에 가까웠다.

이후 근대 박물관이 등장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배치하는 분류학적 전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물건을 모으던 단계에서 벗어나 지식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본격적인 '전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은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서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타이포그래피를 아우르는 통합적 철학을 전시 공간에 투영하며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흐름이 러시아 아방가르드다. 특히 핵심 인물인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는 전시 공간을 하나의 총체적인 예술 환경으로 인식하며 현대 전시 디자인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했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시선을 고려한 그의 실험적인 시도들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전시 디자인은 스토리텔링과 체험을 결합한 경험 디자인으로 확장되었으며,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대적 전시 디자인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산업의 쇼케이스와 권위의 무대

현대의 대형 박물관 전시는 거대한 산업에 가깝다.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들고 국가 간에 귀중한 작품들이 오가는 오늘날의 전시 풍경을 만든 결정적 계기는 영국의 '1851년 수정궁 박람회(Great Exhibition)'에서 찾을 수 있다. 런던 하이드 파크의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열린 이 행사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산업 디자인 전시였다. 영국은 자국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제조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전 세계의 제품을 한 공간에서 비교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수준 높은 디자인을 대중에게 선보여 국민을 계도하겠다는 교육적 목적도 내포되어 있었다.

수정궁은 철과 유리를 활용한 모듈형 조립 건축으로, 내부가 밝고 거대한 개방형 공간이었다. 이 거대한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체계적인 분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국가별, 산업별, 재료별로 구역을 나누고 관람객의 동선을 설계하면서, 공간 기획이 전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관람객의 경험보다 효과적으로 물건을 나열하는 쇼케이스 성격이 강했지만, 규모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대규모 전시 산업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국이 전시를 산업과 시스템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면, 프랑스는 전시를 예술의 권위로 확립한 나라다. 루브르 박물관을 중심으로 이어진 살롱(Salon)의 전통은 왕립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엄격한 심사 시스템을 바탕으로 했다. 살롱에 전시된다는 것은 국가가 공인한 예술가라는 증명이었으며, 이는 곧 예술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였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비평가들은 날 선 평가를 내놓으며 전시를 하나의 공론장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식 전시 문화에서 배치는 곧 권력의 위계이기도 했다. 어떤 작품이 어느 위치에 걸리는지는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와 권위를 상징했다. 시선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걸린 작품보다 관람객의 눈높이에 배치된 작품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전시는 예술의 가치를 선별하고 평가하며 사회적 구조를 형성하는 권위의 무대로 기능했다.

image.png 1851 great exhibition, 출처: english-heritage.org.uk
image.png Louvre salon Carré


아이디어가 전시가 되다.

단순히 작품을 모아두던 장소에서 현대 전시 디자인의 틀을 확립한 곳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다. 예술, 건축, 공예의 통합을 목표로 했던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전시 공간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전시는 더 이상 그림을 걸어두는 배경이 아니라 타이포그래피, 사진, 구조물, 동선, 시야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종합 매체로 정의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있었다. 바우하우스에서 타이포그래피와 광고를 담당했던 그는 전시를 정보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구조로 설계했다. 그가 정립한 전시 이론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시는 읽혀야 한다. 전시는 단순히 미적인 감상을 넘어 정보와 형태가 관람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진, 캡션, 도표, 타이포그래피를 강하게 결합한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둘째, 공간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관람자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공간 안을 이동하는 존재다. 따라서 전시는 벽면 구성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의 동선과 시야의 변화를 고려하여 조직되어야 한다. 셋째, 건축과 그래픽의 통합이다. 전시장의 벽은 문자와 이미지가 결합되는 건축적 면으로 작동하며, 공간과 정보가 하나로 통합된 환경을 만든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도 혁신적인 전시 디자인이 태동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영향 아래 예술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사회를 조직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흐름의 핵심 인물인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는 독일 활동 당시 전시 디자인 역사에 남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923년 베를린 전시에서 선보인 ‘프라운 룸(Prounenraum)’은 방 전체를 회화와 건축의 중간 상태로 탈바꿈시킨 초기 실험이었다. 이는 그림이 곧 공간이 된 방으로, 작품과 벽,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공간 자체를 조형적으로 조직했다. 관람자가 한 지점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관습에서 벗어나, 여러 시점에서 공간을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이어 1927년 하노버에서 선보인 '추상실(Kabinett der Abstrakten)'은 관람자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설계한 전시였다. 이곳에는 관람자가 이동함에 따라 벽의 명암과 인상이 달라지는 수직 슬랫(Slat) 구조가 도입되었다. 또한 관람자가 직접 작품을 열고 가리며 비교할 수 있는 슬라이딩 패널과 가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했다. 빨강, 검정, 회색, 흰색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리듬감 있게 조직된 이 공간은 관람자가 수동적인 구경꾼을 넘어 스스로 작품을 조합하고 발견하게 만드는 현대적 경험 디자인의 시초가 되었다.


image.png Prounenraum, 출처: johannesreponen.com
image.png El Lissitzky’s “Cabinet of Abstraction”, 출처: socks-studio.com


관람자에게 몰입을 선사하다.

오늘날 유럽에서 전시디자인은 전시 자체의 미학보다, 관람자의 경험과 공공적 역할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은 몰입형·감각형 전시의 확산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예술 행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람자가 공간을 통과하며 감각적으로 읽고 경험하는 구조가 중요해졌다. 2026년 비엔날레가 전시디자인과 시노그래피(scenography)를 별도의 영역으로 강조한 점은, 전시디자인의 위상이 그만큼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전시를 그래픽이나 장식의 문제로 보지 않고, 건축적 공간 구성과 결합된 총체적 환경으로 이해한다. 즉 전시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람자가 직접 체험하는 감각적 환경으로 설계된다.

한편, 접근성과 포용성 또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inclusive’와 ‘accessible’ 전시는 더 이상 부가적 요소가 아니라, 전시디자인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서 전시의 구조가 설계된다.

지속가능성 역시 현대 유럽 전시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이다. 환경 문제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전시, 자재 재사용, 전시 이후의 처리 방식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고려된다. 전시는 단순히 보여주는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지는가까지 포함한 과정으로 평가된다.

도시별로 보면, 런던·베를린·파리와 같은 전통적 박물관 도시는 기존 기관을 리뉴얼하며 공공 전시의 질을 강화하고 있으며, 베니스·밀라노는 비엔날레와 디자인 위크를 중심으로 실험적 전시를 이끌고 있다. 또한 북유럽은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아 전시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 유럽의 전시디자인은 몰입, 공공성, 접근성, 지속가능성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image.png 60th Venice Biennale, 출처: courtesy of Jennifer Pratt Mead




독일에서 예술학교 학생으로 지내며 가장 크게 누렸던 혜택 중 하나는, 뮌헨의 뮤지엄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뮌헨은 알테 피나코테크를 비롯한 여러 피나코텍 미술관과 그래픽 박물관, 역사박물관 등 대형 기관부터 작은 갤러리까지 다양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는 도시였다. 그 안에서 예술학교 학생으로서 이러한 환경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뮤지엄으로 향했다. 상설전시뿐 아니라 기획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동시에 신진 작가들의 작업도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유럽의 뮤지엄들이 공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는 가였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한 작품과 깊이 마주할 수도 있었고, 때로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이어지며 전시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경험되기도 했다.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학습이자 경험이었다.

사실 작품 이미지는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시를 찾는 이유는, 작품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어떤 작품과 나란히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사이를 걸으며 어떤 감각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직접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뮤지엄을 필수 코스로 방문한다. 단순히 유명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경험과 감상이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순간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전시디자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는 작품과 작가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며 전시를 구성하고, 관람자의 동선을 설계한다. 때로는 명확한 콘셉트를 통해 특정한 흐름으로 관람자를 이끌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적이고 감각적인 설계는 우리가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감상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혹은 일상의 여가와 데이트를 위해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시는 예술가뿐 아니라 큐레이터,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결과물이다.

이제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공간과 감각을 통해 예술을 경험하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시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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