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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Jun 07. 2021

왜 조형예술에만 낮은 잣대를 대는 걸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얼핏 들으면 참 멋있는 말 같지만 사실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예술가'라는 단어 대신 어떠한 단어가 다 들어가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꼭 예술가라는 직업만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직업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듯이 말이다. (쉽지는 않지만)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대통령은 아니다.


예술가라는 큰 범주 안에는 피아니스트,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무용수, 소설가, 시인, 영화감독, 배우, 희극인, 건축가, 화가와 같은 다양한 직업군들이 포함된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이러한 직업을 얻기 위해 예술가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연습하고 처절하게 노력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예술은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 중에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가 특별한 직업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은 다 저마다의 기술과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므로 모두 가치가 있다.


디자이너로 회사생활을 하는 나는 매일매일 내가 한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다. 좋은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가끔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이다. 나는 이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 듣기에 기분 나쁘니 좋은 피드백만 해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나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도 아마 매일매일 본인이 한 일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과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실력이 쌓여 그 일에 전문가가 된다.


그런데 조형예술(주로 현대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 가운데에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낮은 잣대를 적용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 모두는 다 예술가며, 예술은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없고 평가받을 이유도 없으니, 평가하지 말라고 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아티스트를 음악이나 다른 예술분야가 아닌 유독 조형예술에서 주로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우리가 다 예술가라면, 예술가라는 직업이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모두가 다 예술가인데, 예술가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우리가 다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은 사람입니까?" 하고 묻지 않듯이, 모두가 다 예술가인 상황에서는 예술가라는 말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모두가 예술가이니, 누가 만들든지 전부 예술작품이 된다. 예술을 감상하고 싶으면 굳이 미술관에 갈 것 없이 그저 내 작품을 보면 되고, 내 주위 사람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두가 예술가라면 실질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예술가가 아니게 되며, 모든 것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사실상 그 어떠한 것도 예술작품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의 평가"는 어떨까? 클래식 음악 안에서는 콩쿠르라는 게 있고, 영화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분야에는 시상식이 있다. 예술을 완벽하게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적지 않은 분야에서 이처럼 미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형식과 관습이 인정되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1등을 하거나 수상을 한 아티스트들에게 박수를 치며, 그들의 노고와 재능에 경의를 표한다. 이러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예술이 발전하고 존속하는 것이다. 조형예술에 대한 평가가 다른 예술분야보다 특히 더 까다롭고 어렵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고 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객관적 판단기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오랜 시간 고독하게 작업을 하는 예술가는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버리기 쉽고, 이 때문에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된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더 많이 성장하고자 한다면 타인에게서 비판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술은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의 리그이다. 사실 모든 분야가 다 자기들만의 리그다. 이것이 직업의 세계다. 하지만 유독 예술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 같다. 누구든지 예술을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예술이 그것을 원하는 것 같다. 아무도 찾지 않는 예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예술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절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직업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아니다. 똑같이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모종의 객관적인 과정들이 있다. 꼭 학교와 같은 전문기관에서 교육과 양성의 차원에서 그런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개인의 수련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지 간에 핵심은, 예술을 하는 선배들과 그리고 예술을 감상하는 대중들의 비판과 부정적인 피드백도 겸허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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