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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Jun 14. 2023

피드백을 먹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독일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활발한 나라이다. 나는 독일 대학교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했다. 학교에 다녔을 때는, 교수의 피드백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과 서로의 작업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수업의 전부였다. 직장에서도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은 거의 매일 이루어졌고, 주기적으로 사장으로부터 회사생활의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즉, 본의 아니게 나는 지난 10년간 피드백을 밥먹듯이 받았다. 


대학교 시절 나는 내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수업시간에 내 작업을 보여주고 짧게 작업의도를 설명하면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이 순간이 가장 견디기가 힘들다. 보통 교수가 먼저 나에게 코멘트를 하고 질문을 하고 피드백을 준다. 그다음에 학생들이 내 작품에 대해서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 함께 토론을 한다. 피드백을 줄 때는 단순히 "좋다", "안 좋다" 식으로는 말하지 않고, 꽤 구체적으로 코멘트를 한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독일어가 더 어눌할 때라 교수가 하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듣는 건 아니었지만 말하려고 하는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교수는 우선 내 작업의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성격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이번 작업은 구성주의의 느낌이 나네, 구성주의의 작가들은 XXX 등등이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예술가들을 나열하고 나면 토론은 더 활발하게 진행된다. 피드백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내 작업을 어떻게 더 진행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학생들이 각자 본인의 의견을 주장할 때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와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살벌한 논쟁이 벌어진다. 또한 누구는 내 작업을 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가벗겨지는 피드백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내 작업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내 작업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교수와 학생들의 피드백을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여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더욱 움츠러들어 작업도 잘 안 하게 되고, 작업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게 된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나처럼 살벌한 피드백을 받는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그 친구들은 다음번에도 또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한다.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내 작업을 꽁꽁 싸매고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졸업할 때까지 피드백을 받는 것이 두려워 작업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이다. 좀 더 내가 피드백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내 작업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다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직장인이 되니 학생 때처럼 피드백받기 싫다고 도망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디자이너는 피드백받는 것을 일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크게 두 종류의 피드백을 받았다. 첫 번째 피드백은 프로젝트 매니저에게서 받고 두 번째는 고객에게서 받는다. 고객에게 나의 디자인시안이 전달되기 전까지는 피드백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학생 때처럼 최대한 내 작업을 늦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나의 시간은 돈과 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디자인 작업을 했었다면 피드백을 받은 후 방향을 재설정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작업한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일찍 보여줬다면 많은 시간을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시간만 버리는 게 아니다.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다시 새로운 디자인을 할 의욕이 없어진다. 그건 회사도 손해지만 나에게도 손해이다. 그렇다면 나는 최대한 디자인한 작업물을 중간중간 매니저 혹은 동료에게 자주 보여줘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빠른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다. 


예술 작업은 주로 나 혼자 하는 일이다. 반면 디자인은 고객에게서 일을 받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나는 정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두 가지 분야에서 동일한 것을 체험했다. 피드백은 반드시 필요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 혼자서 어떤 것을 끌고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 시간을 내고 고민을 해도 제자리걸음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혼자만의 고민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려면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 혹은 제삼자에게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내가 너무 익숙해져서 보지 못하는 것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 후에 우리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피드백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더욱이 피드백을 안 좋게 받을수록 사실 우리는 더 성장한다. 내가 혹시 누군가에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면 나는 그만큼 배우고 나의 부족한 점을 개선한다. 하지만 좋은 피드백만 받았다면 거기서 멈춘다. 더 이상 고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판적인 피드백을 우리는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단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만 하는 피드백은 예외이다. 


피드백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올바른 피드백을 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를 비판만 하는 그런 피드백은 큰 의미가 없다. 잘못된 점이나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가끔 피드백을 받은 후 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만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전혀 이야기해주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피드백을 줄 때는 내가 상대방 입장이라 생각하고 피드백을 잘해줘야 한다.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자세히 날카롭게 피드백을 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비판하는 이유를 피드백을 받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게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이건 별로인 것 같아" 이런 식의 피드백을 줄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상대방을 판단할 때 사용했던 기준이 나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의 작업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듯이 내 작업에 관해서도 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된다.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황에 있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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