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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켈리 Jun 17. 2024

[ep.18] 팔라스데레이에서 아르주아(4)

(2024/5/5) 카미노 매직

아르주아를 향해

힘차게!는 아니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 왼쪽 or 오른쪽, 당신의 선택은?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몰라서

갈림길 앞에 멈춰 서 있는데,

뒤에서 3명의 순례자가 나타났고

그 중 흥 많은 여자 분께서는

미국인 특유의 바이브로 나를 향해

Left or Right!를 외치셨다.


그들은 왼쪽으로 간다길래

나도 망설임 없이 왼쪽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그들의 걸음은 매우 빨라서

나의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고

갈림길에서 왼쪽길을 선택한 이후

나는 한동안 걷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오른쪽길을 선택한듯 하다.

나중에 오른쪽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걷는 사람은

나 뿐이었고, 기왕 아무도 없는 김에

노래나 부르자 싶어서

부르고 싶은 노래 메들리를 했다.


☆ 순례길에서 부른 노래 ☆

  · 고유진-걸음이 느린 아이

  · Trespass - 아름다운세상

  · Oh happy day!

  · 이영현 - Fly high

     (가사 All your worries good bye

      Don't you cry. Let the pain behind

      I'll be there to stay beside)

  · Sister Acts - pay attention

     (가사 If you wanna be somebody

      If you wanna go somewhere

      You better wake up and

      Pay attention)

   · God - 길

   · 윤종신 - 오르막길

     등등

      

그렇게 노래부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비가 멈추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고

갈림길의 합류점에 도달했는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맑아지기 시작한 하늘. 말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고

걷는 내내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봤던 사람을 또 보게 되면

엄청난 내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내적 친밀감만 느끼며

홀로 걷고 있는 내게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바로 첫째 날에 마주친 갈림길에서

내가 길을 물어봤던 아시안 청년이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괜찮냐고 하면서

첫째 날, 갈림길에서 마주친 그 친구에게

내가 엄청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어느 길이 더 쉬운길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 괜찮아!!!" 라고 답했다.

(마음의 소리 : 사실 안 괜찮아!!!)


그리고 그 친구는 자기 옆에 있던

스페인 여성분을 소개해줬다.

오늘 걷다가 만나서, 같이 걷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 여성분은 멍멍이랑 같이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통성명을 하게 됐는데,

그 아시안 청년의 이름은 디노,

대만 사람이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그 스페인 여성분의 이름은 벨렝

스페인 이비자에서 왔고

나보다 몇 살 언니였다.

강아지 이름은 뤠RRR이(혀 굴리는 발음)


그리고 난 이들과 대화를 하며

같이 걷게 되었다.

혼자 걷다가 갑자기 동행이 생긴 것이다.


벨렝과 뤠RRR이와 디노

어디서부터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어떤 계기로 이 길을 걷게 됐는지,

물집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

우리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끊김 없이

계속 이어졌다.


벨렝은 스페인에 살지만

이 길을 처음 걷고 있다고 하고,

오 세브레이로에서부터 걷고 있는데

걷는 초반에 눈이 왔었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디노는 나랑 똑같이 사리아에서부터

걷고 있는데, 어릴적에 이 산티아고 길을

알게 되었고 언젠간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나는 유튜브 보고 여기 오고 싶어서

바로 비행기 표 끊고 2주 만에 준비해서

왔고, 한국 집에서 사리아 숙소까지

43시간 걸려서 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 셋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 여성분이

벨렝에게 저 멍멍이가 너의 멍멍이냐고

물어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3명이서 걷던 우리는 4명이 되었다.


그 외국인 여성은 칠레에서 온 니콜이다.

50대이고, 친동생이랑 같이 길을 걷는데

동생은 컨디션이 안좋아서 따로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니콜은 칠레의 파타고니아가

엄청 멋있고 좋은 곳이라고

우리에게 추천해 줬으며,

본인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본인 가족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쉼 없이 해주었다.


니콜은 영국이랑 미국에서도 살았어서

영어가 엄청 유창했다.

그래서 영어로 대화하다가

벨렝이랑 스페인어로 대화하기도 하고

벨렝과의 대화를 통역해 주기도 하고

자유자재로 언어를 활용했다.


니콜은 우리의 옷을 보라며

빨강, 주황, 노랑

모든 색깔이 다 있다고

예쁘다고 좋아했다.


비가 쏟아질 땐

흙바닥과 흐린 하늘을 보면서 걸으니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날씨가 개니 칼라풀한 세상이

눈에 들어오면서 모든게 이뻐보였다.


왼쪽부터 나, 디노, 니콜, 벨렝, 그리고 멍멍이 레이

이렇게 4명이서 걷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외국인 남성이 나타났고

디노랑 그 외국인 남성이

서로 인사를 한 순간부터

4명이서 걷던 우리는 5명이 되었다.


그 외국인 남성의 이름은 테헤

영국에서 온 청년이다.

디노랑 테헤는 일면식이 있는 듯 했다.


사실 난 이 청년과 첫째 날에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청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듯 했다.

(순례길-8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버스정류장 같은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바로 테헤이다.)


테헤는 지금 발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며

내일부터는 가방을 동키로 보낼거라고 한다.


우리는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르고

방금 만나서 같이 걷게된 사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의 신선하고 달고 맛있는

오렌지 착즙 주스를 극찬하기도 하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먹었던 음식이나

에피소드를 서로 공유하는 등

시간 가는줄, 거리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와 걸음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오늘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하게 되는데...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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