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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May 30. 2023

우당탕탕 대만여행 13-대만의 한강, 단수이 즐기는 법

열여섯 살 사춘기 딸과 다시 대만 여행

2월 25일(토) 대만 여행 5일째. 


'단수이(淡水)'는 타이베이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강의 이름이자 이 단수이 강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단수이 강을 즐기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단수이구(淡水區) 지역의 강변에서 한 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전철 레드라인을 타고 북쪽 종점역인 단수이역에 내려서 단수이 라오지에(淡水老街, 단수이 old street)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 등을 구경하고 버스나 도보로 위런마토우(漁人馬頭, 어부의 부두)로 이동해 바다 너머로 지는 일몰을 감상한다. 배를 타고 건너편 '바리(八里)'로 다녀오기도 한다.


딴수이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있으니 바로 '다다오청 부두(大稻埕碼頭 대도정마두')에서의 유람선과 강변 자전거 라이딩이다. 다다오청 부두는 청나라 말부터 근대까지 타이베이에 물자를 공급하는 큰 항구였다. 청나라 말에 청나라가 파견한 대만성 초대 순무(巡撫 청나라의 지방 장관)인 유명전(劉銘傳)이 이곳에 항구를 건설한 이후 다다오청 부두와 근방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물류 집산지가 되었고 외국 무역회사가 설립되는 등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찻잎 교역이 매우 활발했는데, 디화지에(迪化街)에 아직도 남아 있는 청나라 시대의 건축물과 전통차관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디화지에의 거리는 지금은 흙으로 매립되어 자동차가 다니지만 예전에는 단수이 강의 지류가 뻗어 있어서 배를 타고 오가며 교역을 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다다오청 부두와 디화지에가 번성할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다. 바다를 건너온 무역선이 인구가 많은 타이베이 안쪽까지 들어와 다다오정 부두에 정박하면 상인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사람과 물자와 돈이 넘쳐나는 왁자지껄한 다다오청과 디화지에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현재의 다다오청 부두는 더 이상 교통이나 운송수단으로써의 기능은 하지 않지만 타이베이 시민들의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주말이면 여전히 거리에 사람이 넘실거린다. 근처에 닝샤 야시장까지 있으니 부두-디화지에-닝샤야시장로 둘러보면 동선이 딱 좋다. 



부두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변 자전거도로였다. 대만 공유 자전거인 유바이크(U-bike)를 타고 경량패딩 자락 휘날리며 달리다 보니 오전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하루 종일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고 하네. 오후에 해 지고 나면 많이 추울 거야. 점퍼 가져가."


아침부터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날이 흐려서 오전에 호텔을 나서며 딸아이에게 한 말이다. 그러자 딸아이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괜찮아."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괜찮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날이 괜찮다는 건가? 추워도 괜찮다는 건가?' 


한 번 더 권했지만 또다시 "괜찮아" 하길래 부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심산으로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타이베이 기차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더 쌀쌀해져 있었다. 


"엄마, 아무래도 옷을 가져와야 할 것 같아요." 


사춘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린다고 하지만 청개구리 같은 행동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있게 된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나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는데 거기에다 또 잔소리를 할 수도 없어서 꾹 참았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건드리면 곧 터질듯한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는데, 이 스트레스가 얼굴을 때리는 쌀쌀한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대로 달리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검색해 보았더니 앞서 언급한 담강구에 있는 위런마토우까지 자전거로 1시간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나온다. 이대로 쭉 달리고 싶었지만 유람선 출발 시간이 다가와 자전거를 돌렸다. 다음에 타이베이에 다시 오면 자전거로 강변을 달려 위런마토우까지 이동하여 석양과 바리를 즐기고 전철로 돌아오는 길에 온천욕을 한 후 호텔로 돌아오는 완벽한 코스를 시도해 봐야겠다.


노래 실력이 꽤 좋은 가수의 버스킹을 잠시 구경하다가 4시 30분에 유람선(2인 25,000원)에 탑승했다. 운행 시간은 90분. 90분 내내 열정이 넘치는 가이드 할아버지가 안내를 하는데, 문제는 타이위(대만 방언인 민남어)로 설명하여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듣기를 포기하고 딸아이와 갑판 위로 올라와 바람을 쐬었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예약 설명서에는 유람선 위에서 지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잔뜩 낀 구름 때문인지 일몰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지 보지 못했다. 유람선에서 내렸지만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조명을 하나둘 밝힌 푸드트럭에서 감자튀김과 음료를 사서 먹고 딸아이는 자전거를 한 번 더 탔다. 대만 여행 중 무엇이 가장 즐거웠냐는 질문에 딸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강변라이딩을 외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역시 몸으로 노는 게 제일이다.



내일은 고속열차를 타고 타이중으로 이동한다. 타이중에서는 하루 머물면서 선생님 두 분을 만날 예정이다. 22년 전 동해대학 어학연수 시절 선생님인 '라이 선생님'과 딸아이 화상 중국어 선생님인 '치엔 선생님'(역시 동해대학 어학당 선생님)이다. 식당은 '객가본색(客家本色)'으로 예약해 놓았고, 3년 전에는 선생님이 사 주셨으니 이번엔 내가 반드시 계산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져 놓았다. 이렇게 타이베이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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