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한국어 교실 이야기
2023년도 2학기, 중학교 한국어 교실의 학생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국적의 고려인 여덟 명, 중국 국적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 중학교에서 수업은 처음이라 아이들이 우악스러우면 어쩌나, 말 안 들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으로 시작했다. 막상 학생들을 만나고 보니 산만하며 공부는 하기 싫어하지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교실에 적응이 되자 슬슬 글쓰기 수업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추억이 담긴 음식'을 주제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먼저 대화를 통해 어떤 음식을 주제로 쓸지 결정하도록 도왔다.
"여러분, 입에 넣는 순간 뭔가 추억이 딱 생각나는 그런 음식이 있어요?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추억이 줄줄 딸려 오는 그런 음식 말이에요."
"데니스는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해요? 지금 딱 생각나는 음식이 있어요?"
"김치찌개요"
"왜 김치찌개가 생각났을까?"
"김치찌개를 처음 먹었을 때 엄청 맛있었거든요."
"언제 김치찌개를 처음 먹었는데?"
"5학년 때요. 제가 처음에는 한국 음식을 잘 못 먹었는데요...."
이렇게 대화를 나눈 후 방금 나눈 이야기를 맞춤법 틀려도 괜찮으니 한 줄이라도 써 보자, 그렇게 시작해 보자고 유도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아이들은 한 줄조차 써 내려가지도 못했고 쓰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아쉽게도 결국 아이들 스스로 글쓰기를 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마친 후 키만큼이나 어른스러워 보였던 아이들이 어려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완전히 적응한 것처럼 거침없어 보였던 아이들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데니스(중학교 3학년, 16세)
저는 12살인 5학년 때 한국에 왔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 밥을 못 먹었었어요. 입맛에 맞지가 않아서 먹을 수 없었어요. 어느 날은 엄마가 치킨을 시켜 주셨어요. 맛있긴 했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도 잘 못 먹었어요.
근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치는 잘 먹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한국 드라마에서 김치를 많이 봤었어요. 그래서 한 번 먹어봤는데, 매우면서도 조금 맛있었어요.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없는지.
다음날 엄마가 나를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 데려갔어요. 누군가 김치찌개를 끓여줬어요. 누구인지 생각은 안 나요. 식당 사장님이었던 것 같아요. 밥이랑 먹었더니 엄청 맛있어서 많이 먹었어요.
지금도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해요. 집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어요. 그래서 김치찌개를 자주 먹지는 못 해요. 하지만 학교 급식으로 김치찌개가 나오면 정말 많이 먹어요. 김찌찌개를 먹을 때 가끔 그때 생각이 나요.
데니스는 한국어 교실에서 가장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한국에 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온 어느 학생보다 발음이 정확하고, 어휘력이 풍부했다. 밝고, 명랑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이 한국어를 빨리 익히는데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깔깔거리며 사방팔방 뛰어다녔을 것 같은 데니스에게도 이런 힘든 순간이 있었구나 싶었다. 며칠째 밥을 먹지 못하는 어린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데니스의 엄마의 마음 또한 고스란히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데니스 부모님이 운영하는 우즈베키스탄 식당에 가서 펠메니(만둣국)를 먹었다. 데니스와 똑 닮은 히잡을 쓴 여성이 데니스만큼이나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였다. 별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근방에서 가장 큰 우즈베키스탄 식당까지 일궈낸 데니스의 가족을 응원하는 작은 소리가 마음속에서 절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