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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Feb 29. 2024

중국 학생 은성이에게 '초밥'이란?

한국어 교사 되기

"은성이가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나봐요. 이렇게 먼저 와서 말을 거는 아이가 아닌데..."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실의 첫 번째 수업이 끝난 후 다문화 학생들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이다. 아마도 은성이는 교실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소극적이고 말이 없는 학생인 듯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일주일에 몇 번 수업해요?"라고 물었는데, 이 한 마디에 상담선생님께서 놀란 것을 보고 추정할 수 있었다. 강사 소개를 하면서 나는 중국어를 할 수 있으며 중국과 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말에 친근감이 생긴 모양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성이의 외할아버지가 대만에 살고 계셨더랬다. 쉰 살도 되지 않는 지인이 지병으로 돌아간 날, 교실에서 문득문득 눈시울이 빨개지는 나를 보고 대만에 사시는 외할아버지도 어제 돌아가셨다고 했다.


수업을 시작하고 보니 은성이는 상담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밝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액션이 크지는 않지만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요구를 말했다. 물론 "쉬는 시간에 노래 틀어주시면 안 돼요?" "이 초컬릿 제가 먹어도 돼요?" "오늘 해야할 수업 빨리 끝나면 애니메이션 보여주세요." 등의 의견이긴 하지만 말이다. 친구들의 짓굳은 장난이나 놀림에도 화 한 번 내는 일이 없었다. 교실에서 수행평가 연습하고 싶다는 거짓말(한국어교실에서는 자지 못하게 하니 교실에서 자고 싶어서였다.)을 하고 한국어 교실에 오지 않은 적은 있어도 한국어 교실에서는 자지 않았다.(교실에서 학생들이 졸려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익힘책 과제를 지시하면 성실히 풀고, 문제를 풀고 나면 교탁으로 와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답을 맞춰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잠시 후에 답을 같이 맞추자는 나의 설명에도 개별적으로 확인 받으려고 한 것은 나의 관심과 칭찬이 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은성이가 추억의 음식으로 '초밥'을 꼽았다. 




추억의 음식: 초밥

최은성


여덟 살 때였어요. 중국에 살 때 친구 생일날 친구 네 명과 생일인 친구의 부모님하고 같이 뷔페 식당에 갔어요. 너무 늦게 가서 식당에는 먹을 것이 많이 없었고 초밥만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초밥을 많이 먹었어요.


누가 더 많이 먹나 시합도 했어요. 어떤 친구는 열다섯 개만 먹고 그만 먹었는데, 저는 엄청 많이 먹었어요. 생일 선물도 주고, 놀이방에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초밥만 보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나요.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중고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교재 1과에 '-었더라면' 문법이 나온다. 이를 활용해서 문장을 만들어보자는 말에 은성이는 "중국에서 살았더라면 행복했을거예요."라고 했었다. 소극적이고 한국어교실이 아닌 곳에서는 말도 잘 하지 않고 작게 움직이는 은성이도 어릴땐 깔깔 웃으며 놀던 아이였구나 싶었다. 초밥 먹기 시합에서 일등했다는 말은 분명 참일 것이다.


인터뷰는 비록 짧았지만 포동포동 귀여운 은성이의 어린시절영상처럼 앞에 떠올랐다. 다음 장면은 한참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덩치 위축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몇 년 뒤 힘든 시기가 지나 한국이든 중국이든 자기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잘 살고 있는 은성이의 모습이 꼭 보고 싶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기 직전 은성이가 먼저 포옹을 요청했다. 러시아 문화권의 어린 친구(한국에서 몇 년 거주한 고학년은 포옹을 요청하지 않는다.)들은 인사로 포옹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중국은 포옹 문화권이 아니라 조금 놀랐다. 


씩씩하게 잘 살아라! 은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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