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복권의 역사는 주택복권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항상 아빠의 지갑에 꽂혀 있던 종이 한 장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당첨된 적은 한번도 없다.
아빠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허송세월을 하면서도 늘 지갑에 새로운 복권을 꽂아놓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부정적 시선으로 복권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 지금도 복권은 몇 년에 한번 로또를 살 정도로 거의 안사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로또에 당첨되면 뭘 할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모순을 저지른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복권을 사야 당첨될 기회라도 얻을 것 아니겠나. 참 우스운 일이다.
넉넉하게 사는 형편이 아니다보니 일확천금에 대한 소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매주 로또라도 사야하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고 첫 번째 고민은 아들에게 있다. 아들은 학교생활을 힘들어한다. 힘들지만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안쓰럽게 말이다.
공부가 어려운거야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지만 아들은 그것말고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문제 행동이 주를 이루던 몇 년을 보내고 나니 남는건 부정적인 시선들.
더구나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집단인 초등학교에 속해 있는 초등학생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자란 시대의 아이들과는 또 다르게 잔인한 구석이 있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세대 답게 나쁜 것들도 빠르고 깊게 배우는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사람을 대할 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정내에서 정서적 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 먹고 살기만 급급하니.
누구나 내 마음 같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형이 존재한다. 그런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자녀를 낳고 각자의 방식으로 양육을 한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 중에서는 정말 후손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을 비하하고 대놓고 가족을 능욕하는 말을 내뱉고 상대가 가진 어려움을 비웃는다. 성급한 일반화라고 나를 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실제로 내 아들은 매일 학교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 당하고도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온 아들은 상처로 가득한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 놓는다.
아들은 저학년 때부터 5학년인 작년까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삼던 아이다. ADHD를 앓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잘못은 잘못이니까 반성해야 한다고 너를 향한 부정적 시선을 원망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다. 그렇다고 악의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다. 자기 조절력이 보통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또라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시선과 평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6학년이 시작되고 부터는 거짓말처럼 문제행동이 완벽하게 소거 됐다. 진작에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정도로 멀쩡한 아이가 되었다.
“비록 네가 몇 년간 우리에게 이상한 모습을 보였지만 올해부터는 그러지 않으니 우리 이제 잘 지내보자. 너 알고보니 참 마음이 예쁜 친구구나!”
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단 한명도 없다는게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문제는 크게 보여도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예 대놓고 무시하고 싫어하고 배제한다.
방학 중에 반 친구 한명이 영국에 다녀왔다며 해리포터 젤리빈을 사왔다고 했다. 그 젤리빈은 정상적인 맛이 그다지 없다. 먼지맛,귀지맛,코딱지맛,잔디맛 등등 먹으면 안되는 맛이 주를 이룬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나름의 정당한 방식으로 당첨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지만 아이들이 모여서 먹을 수 있는 맛을 나눠 가진 후 먹을 수 없는 맛을 아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그냥 놀이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고 먹는 모습을 보고 낄낄 대면서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위층에 사는 반 여자친구는 병신,돼지,더러워,냄새나 등등의 폭언을 매일 해대고 때리는 시늉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고 한다.
얘야..내 아들은 아침마다 샤워를 해. 엄마가 냄새에 민감해서 흔한 사춘기냄새도 전혀 안나. 그래서 더럽지 않단다. 3개월에 한번씩 대학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는데 체중도 간수치도 정상이래. 그러니까 돼지가 아니야. 내 아들은 너보다 키도 크고 힘도 더 셀걸? 진짜 다이다이 한번 붙어보면 다시는 때리는 시늉 따윈 못할 걸! 그리고 병신이라니? 너 엄마한테 그렇게 배웠냐?
라고 말해주고 싶다. 현실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그 부모에게 아동학대로 고소 당하겠지만.
똑같이 상처를 주라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정당하게 항변하라고 매일 교육 시키는데 타고난 성정이 유순한 아들은 그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매일 그런 환경에 노출된 사람은 자신감이라는게 없다. 싫은 소리도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넌 친구가 없어. 그럴 바엔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해 버려. 네가 참아도 알아주지 않는 애들이고 너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데 참으면 그냥 더 바보로만 보일 뿐이야. 잘못된건 지적하고 기분 나쁘면 항의 해. 그건 잘못된게 아니야.
아무리 가르쳐도 막상 친구들 앞에 서면 작아지는 아들의 심리를 모르지 않는다. 화가 나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지만 이게 내 아들이 처한 현실이고 견뎌야 하는 세상이다.
오히려 다행이다. 나를 닮았다면 학폭 가해자로 수시로 신고를 먹었을게 뻔한데 말이다.
이번 주부터 우리 동네 로또 명당에 가서 줄을 서야겠다.
꼬박꼬박 일확천금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겠다.
로또에 당첨되면 아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줘야지.
학교 그 까짓것 때려쳐!
홈스쿨링 해!
친구? 그거 얼마면 돼! 내가 돈으로 사겠어.
원빈님이 가을동화에서 했던 대사를 큰 소리로 외쳐주고 싶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