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꿈은 이루어진걸까?
목포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목포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케이블카 바닥은 투명창으로 되어 있어서 좀 무섭기도 하지만 짜릿하다. 내가 케이블카를 탄 시간이 저녁 7시쯤이라 다도해의 금빛 낙조와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캬~ 기막힌 목포의 오션뷰 맛집이다. 긴 하루 중 짦은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일몰... 어느새 푸른빛이던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저 뒤에 봐봐! " 옆칸 케이블카가 마주 스쳐 지나가며 찰나의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마운틴뷰에 놀란 꼬마 승객의 외침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 나에게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날은 초록이 한층 싱그러움을 뽐내고 햇살마저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다. 새로운 수업 시작 알람종이 울리고 2학년 담임선생님이 들어 오셨다.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꺼내 하얀 종이 위에 반을 접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쪽에는 나중에 커서 꼭 되고 싶은 꿈을 그리라고 했고, 나머지 한쪽에는 본인이 그린 그림에 대한 설명을 쓰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당시 마루 인형에게 새 옷을 입히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소녀였다. 11식구 대가족 속에 자란 환경 탓에 새 옷은 커녕 항상 고모들과 세 명의 언니들이 입었던 옷을 물려 입었기 때문이었을까? 10살 소녀의 새 옷에 대한 열망은 대단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앞으로 나와서 발표시켰다. 몇몇 아이들이 차례로 나가 자신의 꿈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레이스가 풍성한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그려 넣었다. " 한 나라의 공주가 되어 아름답게 마을을 잘 다스리겠습니다. " " 오 마이~갓.." 그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10살이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아빠 또는 동네 순경일 수 있다는 미담 정도는 알만한 나이였건만, 예쁜 옷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소녀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어무 몰랐던 거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내 별명은 공주가 되어 친구들에게 꽤 놀림을 받았다.
어렸을적 공주가 꿈이였던 철부지 소녀는 이제 적당히 세상과 타협도 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해졌고, 얼굴에 적당히 주름이 잘 어울리는 48살이 되었다. 공주가 꿈이었던 그 소녀의 방에는 화려한 드레스 대신 계절별로 취향과 개성을 뽐낼만한 다양한 색깔들의 옷들이 드레스룸 두 곳에 가득하다. 세월이 흘러 빛바랜 추억이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순진했던 소녀, 그녀의 공주 꿈은 이루어 진 걸까?
"컹~컹~ "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포의 뉘집 개짖는 소리에 뜬금없는 추억에서 나는 다시 케이블카 안으로 소환되었다. '후~훗 ' 케이블카 좁은 창으로 습한 공기가 스며든다. 달빛 아래 목포의 밤은 코흘리개 추억과 함께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