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죽음에 대해 떠올리기도 한다. 그저 아직은 먼 얘기 같은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어렴풋하게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지 알게 된다.
우리 할머니는 98세까지 사시다 가셨다. 다 빠져버린 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조금 덜 연로하셨던 때에 심장 수술을 하셔서 허리도 꼿꼿하고 잘 걸으셨지만 같이 걷다 보면 한참 뒤처지셨다. 그래도 내 걸음에 맞춰주시려고 얼른 걸어주시던 할머니. 삶의 변곡점마다 순탄치 않으셨던 할머니의 삶을 슬쩍슬쩍 엿볼 때 어떤 얘기는 덤덤하게 말씀하셔서 나도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너무 슬픈 얘기였다. 어떻게 그 마음 안고 여태 사셨을까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행이다 살아계셔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는 얼마든지 우리들 남겨두고 떠나실 수 있는 분이셨던 거 같다. 우리들의 어눌하고 어설픈 모습에 자꾸 놓치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던 주변 친구들 다 떠나가고 홀로 남으실 때까지 외로운 시간들을 홀로 걸으신 거 같다. 가족도 말이 가족이지 다 장성한 자식들은 다들 제 살기 바빴고 손자 손녀들도 다들 왕성하게 제 할 일 하느라 할머니는 뒷전이었다.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은 부끄럽지만 홀로 누운 부산의 어느 한 요양병원 침대였다. 그때 곁에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 함께 하지 못했다. 엄마와 같은 할머니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원래 삶은 그렇게 몰아치는 거고 삶의 여유는 나이 들어 죽기 직전에야 여유가 생기는 거다. 그제야 사랑하는 가족이 하나하나 보이는 거다.'
할머니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 급하게 보고 싶던 얼굴들을 다 보고 가셨다. 보실 때 정말 얼마 남지 않는 사람처럼 한 명 한 명한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 주셨다. 손자들이 일을 제쳐두고 왔을 때는 너희들 얼굴을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기도 하고 이모들과 엄마가 면회하러 왔을 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며 유일하게 고마운 점이 너희를 남겨주고 가서 그게 참 고맙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착하신 분이었다. 엄마가 저 놔두고 제 갈 길 가버린 손자를 자식처럼 어릴 때부터 키워주시기도 했다. 나는 회사에서 병가 휴직으로 할머니가 계시는 막내이모집에 내려갔었다. 말이 병가 휴직이지 사실 잘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여러 가지 일들로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지리산 아래 막내 이모네 집에서 할머니의 밥을 먹으며 차츰차츰 괜찮아졌었다. 그래서 할머니께 감사하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큰 병으로 이제 더 사실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빨리 정리해 버린 것인지 그때 이후로 할머니 면회를 가면 가만히 있다가 그냥 집으로 와버렸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에 마음을 정리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셨다.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다 했다. 다 마무리되었다. 근데 눈물이 난다. 완전히 앓아눕기 전에 할머니의 전화통화가 생각났다. 자신은 병이 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는데 나한테는 밝은 목소리로 "밥은 먹었냐."는 할머니의 물음이 떠올라서. 이제 앞으로 그런 사람은 내 인생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는 가셨지만 생각이 난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데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모습에서는 할머니가 더는 귀가 안 들리지 않으셨고 편안하게 잘 걸으셨다. 아픈데 없이 건강한 모습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