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1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후배도 생겼다. 워낙 큰 회사고 수익을 많이 내는 회사라 1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했었다. 제일 처음 온 사람들은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나온 남사원들이었는데 이미 있던 남자 선배들이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선배라고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었었다. 게 중에 한 남사원과 말도 하며 친해졌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일을 잘 못한다고 혼이 자주 났었다. 그 남사원은 남자선배들을 조금 말리곤 했었다. 나는 유치해서 좀 더 확실하게 말해주었다면 그 남사원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 사람과 사귀었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주변 청소 및 회의를 마치고 공정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는 이 말을 해버렸다.
"지엽 씨는 바나나 같아요."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주걱턱인 친구를 바나나 같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웃어넘겼던걸 생각하다 그 말을 해버린 것이다. 여긴 학교가 아니고 또 친구도 없는데 난 그 말을 한 순간에도 이게 크나큰 실수가 될 줄 몰랐었다.
내가 맡은 공정은 용해성형그룹. 수습사원을 거쳐 일반 사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하다 혼이 났다. 어떤 날은 내가 쓴 공정학습일지(OJT)가 누가 대신 써준 것이라며 혼이 났었다. 내가 글씨체를 바꿔 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일에 보태서 지각한 일, 태도 불량, 일을 제대로 못 쳐낸 일 등 등이 합쳐져서 나는 멱살이 잡히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하는 돈 버는 일이 이런 일인지 꿈에도 몰랐다.
물론 돈을 버는 사회생활이 결코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쌍욕을 듣고 괴롭힘을 당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같은 그룹의 같은 조, 같은 공정의 일을 하는 여사원들과도 그렇게 친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공장일이 조금 하다가 돈이 벌리면 금세 관두기 때문에 정을 주지 않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나는 내가 당한 일이 억울하지만 직장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만큼 일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공장을 다녔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에 기숙사에 가면 같은 호실 쓰는 사람들한테 이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해결책은 없었다.
계속 다니다 보니 나처럼 고졸 입사한 여자 후배도 생겼는데 그 애는 적응도 잘하고 일도 곧잘 했다. 직장은 내게 2부지 이동 면담을 할 때 "네가 안 가겠다고 하면 그 애가 가야 해."라고 했었다.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일도 잘하는 사람인 여자 후배는 어딜 가든 잘 적응했을 거다. 하지만 직장도 날 보내길 원하고 나도 선뜻은 아니었지만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나 대신 그 여자 후배가 가게 되면 내 입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멋있어지고 싶었나보다. 나는 그곳에서 1 - 2년 정도 일하고 2부지 다른 조로 옮기게 되었다.
2부지로 가기 전 같이 일했던 지엽씨가 성형을 했다. 용해성형그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하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하관을 수술했다. 내가 장난스레 했던 말이 상처가 되어 수술을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같은 그룹의 다른 조 입사동기 동갑내기 여자애가 "지엽씨 왜 이렇게 잘생겨졌어?"라며 말했다. 아무말도 못했다.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고 나는 새로운 부지의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내가 일을 유독 못해서 욕을 듣고 그렇게 좋지 않게 옮기게 되었는데 나는 그 일이 계기였는지 본래 그랬는지 냉정해졌다. 아니다 차츰차츰 그런 사람이 되었던 거겠지. 원래도 그런 성향이었던 거 같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 대가족이었다. 삼촌들도 많아서 엄마가 많이 힘들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삼촌이 우리 집에 같이 살았는데 초등학교4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전학을 왔다. 전학할 때도 헤어지는 친구를 아쉬워하거나 연락을 지속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온 곳에서 좀 오래 살았다.
초등학생 때 잠시, 중학교 때 잠시, 고등학교 때는 다르려나 싶었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오래 만나거나 연락을 지속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생활이라고 뭐 다르랴. 나는 2부지로 이동하고 한번도 원래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1부지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가 음료수 사서 한번 놀러오라고 사내채팅으로 얘기를 걸어왔었다. 나는 아무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