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부담 없이.
난 3살 때 한글을 배웠다.
스토리는 아빠가 이야기 해주셔서 알게 됐지만 나의 기억에도 희미하게 사진처럼 박혀있는 한 장면이 있다. 4살의 어느 날이던가. 어린이 잡지책을 한 구석에 쌓아두고, 거실에서 불 하나를 켜 두곤 새벽까지 부모님 몰래 책을 읽었다. 물을 마시러 나온 아빠가 귀신인줄 알고 깜짝 놀라 그만 읽고 자라며 혼을 내 눈물을 한바탕 쏟고는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사고가 가능한 나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상 난 그 어린 나이에도 '읽고 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4살 때 쓰기 시작한 그림일기를 보면 또래보다 조금 앞서긴 한 것 같다. 그런데다 엄마의 호들갑과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내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니... 하지만 겸손하지는 못했던 내 성격 탓에 동네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많이 받았다.
6살 때 가장 좋아하던 책이 세종대왕 위인전이었다. 어린 세종인 '이도'가 밤 늦게까지 호롱불 하나에 기대어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는 에피소드에 꽂혀서였을까. 왠지 나도 그처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거란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왜, 어떻게 3살이라는 나이의 아기에게 한글을 가르칠 생각을 했을까. 나에게 언어에 소질이 있다는 어떤 실마리를 보셨던 걸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방과 후 교실에서 논술 수업을 듣고, 글짓기 대회에는 무조건 나가서 상을 타와야 했고, 중학교에 가서는 논리속독 학원을 다니고, 혹시 모른다며 스피치 수업까지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거라도 없었으면 수능 성적이 정말 별볼일 없었을 것이다. 난 국어 빼고 다른 건 정말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선 칼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슬듯, 딱히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던지라 그 이상 실력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인스타그램에 감성글 하나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정도. 그 뿐이다. 고등학생 때 부터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너무나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화려한 음표들에 가려 글자들이 눈에 들어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은 재미 없어. 지루해. 라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바뀌었다. 음악 뿐만 아니라 모든 매개체를 통해 세상에 내 생각을 전하는 게 꿈이 됐다. 그것이 영상이든, 글이든, 하다못해 카페에서 휴지에 끄적인 낙서든.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나를 표현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내가 쓴 글이 담긴 책을 파는 서점, 그 옆에 내가 만든 영화를 상영중인 영화관, 그리고 그 시내 한복판에서 시끄러운 차 소리를 배경삼아 피아노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그 얼마나 대비되는 아름다움인가.
나를 표출하고 싶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28년을 살아오며 나는 참 많은 '예술적인' 것들에 손을 댔다. 그 많은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예술'밖에 없었다. 피아노와 영상편집을 '손가락 쓰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 소중한 음성 파일들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좋은 악상이 떠오르면 흥얼거리며 녹음을 하곤 한다.) 그렇게 한 데 묶인 나의 '예술성'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내가 세상을 궁금해하듯, 세상도 나를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가장 흔히 일어나는 욕구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도 이런 욕구를 겪고 있겠지. '관종' 소리마저 달게 느껴지는 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 쉽게 걸어올 수 있도록 이 길을 닦아보려 한다. 아직까진 '종합 예술가'라는 말로밖엔 표현이 안되는 이 길을.
거창한 포부와 비교적 부끄러운 글솜씨, 먼 훗날의 내가 본다면 이 글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그땐 그랬지.' 하며 귀엽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 진짜 글을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