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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Dec 07. 2022

날 닮은 너

네가 ADHD 판정을 받던 날

혹시 내 아이가 ADHD가 아닐까 처음 생각해본 건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아녜스가 열 살 때였다.

방과 후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오후 시간. 담임선생님께 걸려온 전화 한 통.


“어머니 혹시 아녜스 집에 갔나요? 수업시간에 마무리 못한 만들기 과제를 남아서 하던 중이었는데 자리를 비워놓고는 한참 안 들어와서 여쭤봐요”


그리고 선생님이 문자로 보내주신 사진에는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한 책상에만 풀과 가위 색종이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책가방도 활짝 열린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아직 휴대폰을 사주지 않은 때라 피아노 학원 원장님께 혹시 그곳으로 먼저 가지는 않았는지 여쭤봤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놀이터를 가봐야 하나? 학교 앞 문구점을 가봐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녜스 찾았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곧 보낼게요 너무 야단치지는 마세요”


순간 맥이 탁 풀린다. 화난 마음보다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곧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늘 그렇듯이 해맑기만 하다.

“만들기 하다가 왜 도서관으로 갔어?”

내 질문에 웃기만 할 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눈치다.


 “몰라 그냥 책이 읽고 싶었어”




엄마표 공부로 아녜스의 초등 6년을 함께한 이유는 빠듯한 살림살이가 한몫을 하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보다 엄마인 내가 내 아이를 더 잘 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게 너에게 더 마이너스가 되었을까. 차라리 유명 프랜차이즈 학원의 이름이 찍힌 셔틀버스를 태워 보내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지루했던 구구단을 지나 곱셈과 나눗셈이 시작되면서 1분마다 같은 방법의 연산 문제를 열 번, 백번, 똑같이 설명하면서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모른다. 백번의 설명을 같은 톤으로 반복하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국민학교 4학년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 쪽 창에는 아직 해가 남아있었다. 나눗셈 문제가 너무 어려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그때의 장면. 교실에 몇 없던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날까 봐 불안했던 감정.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시커메진 노트의 질감, 문제를 풀다 말고 교실 마룻바닥 골골이 쌓인 먼지들이 햇살을 받으며 유영하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 뭐든 느렸던 나. 생각해보니 너는 내 딸이 맞구나.




6학년 여름이 시작될 때쯤, 큰맘 먹고 병원을 찾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속해 있는 학습발달 클리닉 센터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고 그렇게 아녜스는 조용한 ADHD 판정을 받았다. 좀 많이 느릴 뿐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학교에서도 문제행동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터라 당황한 남편과 달리 나는 그동안의 물음표들이 느낌표들로 바뀌며 그랬구나 그랬구나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아녜스 하나였다면 날 닮아서 그래. 그래서 느린 거야 아이들이 다 그런 거지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은 구구단을 외는 속도도 빨랐고 곱셈과 나눗셈 연산을 백번씩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결정적으로 동생은 읽을 수 있는 쉬운 파닉스 단어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녜스가 읽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검사를 결심했다.




콘서타 18mg 약을 처방받고 심란한 마음에 한동안 약을 먹이지 않았다.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은 나에게도 있었고 부작용으로 식욕부진과 수면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암 선고를 받은 것처럼 무서웠다.


다행히 주의집중력만 떨어질 뿐인데 꼭 약을 먹어야 할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차라리 일찍부터 다른 길을 찾아주는 건 어때?

이거 다 엄마 욕심이지. 아녜스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 그런데 지금 약을 먹지 않으면 아녜스가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지금도 말랐는데 한창 먹을 나이에 못 먹으면 키는 어쩌려고.


내 안의 많은 나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내가 별다른 사춘기도 없이 고3이 되었을 때. 아빠에게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고가의 제품을 사달라고 졸랐었다. 난 정말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지만 늘 어려웠다. 난 왜 안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이어지면 늘 결론은 집중력이 부족하니까였다. 아빠가 중고로 그 고가의 제품을 사놓고 자랑스럽게 동네 어귀에서 나를 기다리던 날. 난 기뻐서 아빠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이제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기계도 크게 도움을 주진 못했고 그 해 수능에서 난 80점 만점의 수리영역에서  9점을 받았다.




여름 방학을 시작하며 약을 먹기 시작한 아녜스는 3개월 동안 밀려있던 온라인 패드 학습을 3일 만에 해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와 더불어 속이 울렁거린다며 3일 동안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내 속을 태웠다. 먹을 수만 있다면, 넘길 수만 있다면 평소 허락하지 않았던 컵라면 젤리 군것질 거리들을 다 먹게 했고 콘서타의 약효가 지속되는 12시간이 수면시간과 겹치지 않게 하려고 약 복용 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렇게 ADHD를 우리 가족의 일상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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